아도르노의 한 제자가 회고합니다:
1. 아도르노의 감기
그 때, 내가 처음으로 아도르노의 강의에 참석했을 때, 그러니까 지난 세기 60년대 중반이지, 하여튼 그 넓은 강의실이 빈 자리 하나 없이 꽉 차더군. 아니 빈 자리가 뭐야,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였지.
시간이 되어 그 유명한 아도르노의 등장을 진짜 거의 숨 죽이고 기다리고 있는데, 웬 걸, 아도르노 대신 이 양반의 조교인 듯한 젊은 친구가 어깨를 약간 움츠린 상태에서 단상에 올라 오더만 마이크 잡고 한다는 소리가, 아도르노가 감기에 걸려 오늘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으니 여느 때 이상의 정숙을 요구한다나. 그 이후에야 그, 그 어마어마한 아도르노가 드디어 나타나더만. 감기 걸린 그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철학자가 말이야.
그 순간 난 세상을 좀 더 알게 되었지:
세상에 날고 뛴다는 철학자는 절대 자기 스스로 감기 걸렸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2. 아도르노의 한계
이 양반의 기본 생각은 지금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썩었다는 게야. 병이 들어도 아주 깊게 들었다는게지. 나아가 이렇게 구조적으로 잘못된 사회 내에는 올바른 삶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을 아주 자주 하더만. 그 당시 이 '잘못된 사회 내에는 올바른 삶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은 거의 그 시대를 풍자하는 유행어가 되버릴 정도였어.
문제는 허나 그 때 당시의 나와 내 주변의 학생들은 이러한 상황 분석적 차원에 머물려 하지 않았다는 데 있어. 더 나아가야 한다고 믿었던게지. 이 사회가 그리 병이 들었으니 고쳐 보자 이거야. 근데 이 아도르노는 바로 여기서 어쩔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보이더만: 이러한 치유의 정치적 행동에 반대를 하더라 이 말이야. 다시 말해 자신이 처한 사회의 이론적 분석은 뛰어나게 잘 하는데 막상 그 구체적인 사회의 잘못을 실천적으로 고치는 행동으로의 전환에는 무능하더란 인상이었어. 흰 웃음 짓지 않을 수 없었지.
그 이후 이 양반 당연 학생들로부터 소외 당했어. 생각해 봐, 한 대학 교수가 학생들로부터 멸시를 당하는 모습을. 얼마나 곤혹스러웠겠어. 허나 자신의 한계에 대한 업보를 받은 셈이라 해야 되겠지. 죽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