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유산의 보관 관리
오래 전에 한 공학도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자그마한 술자리였는데, 이 양반 침 팍팍 튀겨가며 열변을 토하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핏대를 올리면서까지 하는 말이, 우리 나라는 자원도 부족하고 해 놓은 것도 별로 없는 나라가 - 자연 과학 분야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 그나마 갖고 있는 것들조차 제대로 간수를 못한다 합니다. 그래 예를 한번 들어 주소 했더만,
'시발택시'를 예로 들더군요. 사십 전의 님들은 거의 모르시겠지만 이 '시발택시'는 우리 나라 최초의 택시 모델이었습니다. 이 양반 왈, 이 모형이 지금 어느 곳에도 남아 있지 않다 하며 이 택시가 물론 순 우리 기술로 만들어졌다고는 보지 않으나 그래도 우리 나라 최초의 택시 모델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그 한 모형만큼은 보존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울부짖으시더만요. 그래야 신 세대들이 그나마 짧은 조선 공학사에 대해 제대로 학습할 수 있지 않겠냐며 말이지요. 듣고 보니 그도 그렇더라고요. 그래 제가 그 뿐입니까, 그 다음에 나온 '새나라택시'도 지금 젊은 세대들이 알기나 합니까 하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독일 뮌헨 올림픽 공원 옆에 BMW 회사와 공장이 있습니다. 회사 박물관 또한 있는 바 그 곳에는 이 회사가 첫 창립 때부터 제조 출시했던 온갖 모형들을 고스란히 전시해 놓고 있습니다. 그러니 방문하는 사람들이 그 회사의 창립 이후의 회사 역사 뿐만 아니라 독일 자동차 역사의 일부까지도 생생히 익히는 기회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나라에서조차 이런 데 신경을 쓰지 않고 있습니까?
이러한 문화 유산 내지는 자료의 상실을 떠올리면 안타까운 사실이 또한 우리 인문학, 특히 역사 자료의 손실입니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가 앗아간 우리의 귀중한 정신 재산 말입니다. 조선 고대사를 연구하시는 한 좋은 님이 전해 주시는 말씀이, 이 분이 연구에 필요해 일전에 일본 천황 도서관의 소장 자료 목록을 직접 청구하셨더랍니다. 며칠 후 목록과 함께 답이 왔긴 왔는데, 이상하게도 일련 번호로 정리되어 있는 목록에 군데 군데 빠진, 그러니까 아예 기록이 되어 있지 않은 공번호가 기재되어 있더랍니다. 이 분 말씀이 이는 일본이 간접적으로나마 자신들의 한국 문화 유산 약탈 행위를 인정한 사실이라 하시더군요.
해방 후 6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개과천선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 일본 정부의 모습 또한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하나 이에 대처하는 해방 이후의 우리 정부의 모습 또한 버금가는 지탄 받아 마땅합니다. 1965 년인가 소위 '김종필-대평 메모'가 중심이 되어 체결되었던 한일 협정 같은 어처구니 없는 작태를 생각해 보십시오.
듣자하니 일본이 도둑질한 우리의 옛도서들을 이제사 돌려주겠다 하던데, 구체적으로 어떤 책들이 다시 돌아올지 무척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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