툇마루

좌파 지식인들의 대화 - 1979년

서동철 2010. 11. 13. 02:03

S: 
모든 사항들을 종합해 보건대, 1920년 공산당의 존재로 인해 이미 극도로 위태했던 좌파의 통일은 지금은 완전 무너진 상태야. 1914년 이전에 좌파는 우두머리를 내세우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저마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일단의 일꾼들의 집단 운동이었지. 

짧게 말해서, 좌파는 다양했고, 동시에 허나 통일되어 있었어. 달리 말하자면, 좌파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단 말이야. 

L: 
어떤 원칙? 무슨 말인지 당췌 이해를 못하겠네. 니가 말하는 1914년 이전 좌파의 통일을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니? 너의 퇴향적 움직임은 어째 신화적인 감마저 드는데, ㅜ ㅜ ㅜ. 

S: 
물론 좌파 내의 정치적 통일은 없었어. 허나 19세기를 거쳐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좌파들은 일반의 정치적 내지는 인간적 원칙을 고수했으며, 또한 이를 기준으로 이념이나 행동을 설정했음을 엿볼 수 있어. 바로 이게 좌파야. 단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원칙이 1792년 경의 좌파 형성 시부터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항상 깔려 있었고, 또한 좌파는 이 원칙을 고수했고 나아가 그 옳음을 확신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묘하게도 그게 무엇인가에 대한 의식은 불투명했었거든. 이게 나로서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인데, 하여튼 서로 이에 대해 토론이 없었고, 아예 그런 말을 꺼내지도 않았거든. 대신 "나는 좌파야" 하는 걸로 만족을 했으니 말이야. 

만약 이러한 불행하게 사라져버린 좌파를 정말로 다시 재생시키고자 한다면 바로 이 원칙을 밝히고 표현함에 힘을 모아야 할게야; 이 원칙의 근본이 무엇이었으며, 이는 또한 오늘날 어떻게 새로 존재할 수 있는가에 생각을 모아야만 해. 내 감히 주장하건대, 좌파는 그 당시 자기네들이 사용한 원칙을 한 번도 명확히 서술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머릿 속으로나마 이에 대한 명쾌한 이해가 되어 있지 않음으로 해서, 그래서 좌파는 죽었던게야. 

(1979년에 이루어졌다는 사르뜨르 레비의 대화를 기초로 부분적으로 각색했다. 사르뜨르 살아 생전 마지막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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