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님,
말씀 하신 공자 문제에 있어서도 님과 저와의 사이에 큰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공자 사상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 적용에 핵심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말씀에 저 역시 동의하니 말이죠.
단지 공자가 우리 조선의 역사에 있어 지금까지 충분히 적용이 되지 않았나 하는 님의 말씀은 저 피해 가렵니다. 우선 그 양적인 면에서 '충분히'란 말이 거북스러운게, 공구는 예수, 붓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최소한 같은 층에 서 계시는 우리 모두의 스승이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세계 제일의 베스트셀러라 여기듯 아직까지도 끊이지 않고 즐겨 읽는 것처럼, 붓다의 금강경을 아직도 손에서 떼놓지 못하는 것처럼, 논어 또한 읽는 이에 따라 씹으면 씹을수록 단물이 죽죽 빠지는 우리 인류 고전 중의 고전이라 확신합니다. 고전이 달리 고전이 아니죠. 각 사회, 각 시대에 따라 달리 해석이 되고 실제 생활에도 달리 적용이 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정신의 보고가 바로 고전 아닙니까?
'충분히'란 말의 질적인 고찰에 있어서도 걸맞는 말인가 의심이 듭니다. 아니, 오히려 바로 이 면에서 제대로 적용이 되지 않았기에 님이 보시는 그런 문제점들이 속출하지 않았을까요 ? 허나 이는 이를 적용하는 이들의 어리석음에 죄를 물어야겠지요. 물론 이에 대한 유가 내 스스로의 비판 또한 있었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이에 준한 대표적인 예로 바로 조선 중기 때의 퇴계와 남명을 꼽습니다. 그 당시의 삐뚤어진 사회를 정신 개혁을 통해 바로잡아 보고자 하셨던 좋은 님들이시죠.
그런데, 님이 말씀하시듯, 이 공자의 가르침이 조선이란 나라를 '말아먹은' 장본인 역할을 했을까요? 님의 말씀 중 "피터지게 싸우다"는 당파 싸움을 말씀하시는 듯 한데, 사실 따져 보면 정치 하는 사람들 붕당 만들어 서로 치고 박고 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이를 굳이 조선만의 특이한 현상으로 타락시킬 필요가 있을까 의심해 봅니다. 그렇다고 이를 꼭 당연시 내지는 정당화시키고자 하는 바 또한 아니나, 이러한 우리가 이전에 학교에서 배웠던 당파 싸움에 대한 백안시가 바로 일제 식민 시대 역사 교육의 연장이었다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아차 했던 충격을 여적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구한 말의 역사를 살펴 보매, 과연 유가의 가르침에 충실했던 이들이 조선을 망쳤을까 하는 의견에는 제 나름대로 꽤 강한 의심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 시대에도 공자는 시퍼렇게 살아 있었듯, 조선 시대에도 붓다는 생생했습니다. 이미 조선 초 세종 때와 특히 세조 때 불교 경전 정리가 이루어졌으니 말이죠. 물론 전 시대에 비해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허나 또 다른 문제가 있긴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까지도 논어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는 엄청 웃기는, 아니 믿기지 않는 사실입니다. 한 예를 들죠:
論語 述而篇의 子釣而不綱 익(주살 익: 지원 안됨)不射宿을 공구의 가르치는 모습을 서술한 글로 보며 해석하기를, 제자들을 한 무리로 보고 이런 저런 도그마로 무차별 이끌지 않으며 - 不綱 - 자기 스스로 깨어있는 자만을 표적 삼아 이끄신다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화살을 쏜다는 矢를 쓰지 않고 익 즉 以生絲繫矢而射也. 다시 말해 쏘고 난 후 실로 당기는 그런 쏘는 모습이죠. 근데 왜 하필이면 述而篇에 그것도 거의 갑자기 공구가 고기를 잡을 때 자연 보호 한다고 그물을 쓰지 않고 낚시를 했으며 자는 새는 쏘지 않는 그 훌륭한 동물 사랑의 정신을 보였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또 거의 대부분 학자입네 하는 사람들 이리 해석해 버리거든요. 어쨌든 이러한 공구의 교육론은 지금 우리의 자녀들한테 적용한다 해도 하등 손색이 없다 말씀드립니다. 더욱 큰 문제는 허나 이런 잘못 해석되어 있는 구석들이 논어 내에서 한 두 군데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말이 또 길어집니다. 하여튼 님이 이런 문제에도 관심을 보여 주시니 저로서는 반가울 따름이고, 그래 이리 어줍잖게 주절대는 기회를 갖습니다.
좋은 시간, 화목한 시간 누리시길 두 손 모아 기도 드립니다.
말씀 하신 공자 문제에 있어서도 님과 저와의 사이에 큰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공자 사상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 적용에 핵심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말씀에 저 역시 동의하니 말이죠.
단지 공자가 우리 조선의 역사에 있어 지금까지 충분히 적용이 되지 않았나 하는 님의 말씀은 저 피해 가렵니다. 우선 그 양적인 면에서 '충분히'란 말이 거북스러운게, 공구는 예수, 붓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최소한 같은 층에 서 계시는 우리 모두의 스승이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세계 제일의 베스트셀러라 여기듯 아직까지도 끊이지 않고 즐겨 읽는 것처럼, 붓다의 금강경을 아직도 손에서 떼놓지 못하는 것처럼, 논어 또한 읽는 이에 따라 씹으면 씹을수록 단물이 죽죽 빠지는 우리 인류 고전 중의 고전이라 확신합니다. 고전이 달리 고전이 아니죠. 각 사회, 각 시대에 따라 달리 해석이 되고 실제 생활에도 달리 적용이 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정신의 보고가 바로 고전 아닙니까?
'충분히'란 말의 질적인 고찰에 있어서도 걸맞는 말인가 의심이 듭니다. 아니, 오히려 바로 이 면에서 제대로 적용이 되지 않았기에 님이 보시는 그런 문제점들이 속출하지 않았을까요 ? 허나 이는 이를 적용하는 이들의 어리석음에 죄를 물어야겠지요. 물론 이에 대한 유가 내 스스로의 비판 또한 있었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이에 준한 대표적인 예로 바로 조선 중기 때의 퇴계와 남명을 꼽습니다. 그 당시의 삐뚤어진 사회를 정신 개혁을 통해 바로잡아 보고자 하셨던 좋은 님들이시죠.
그런데, 님이 말씀하시듯, 이 공자의 가르침이 조선이란 나라를 '말아먹은' 장본인 역할을 했을까요? 님의 말씀 중 "피터지게 싸우다"는 당파 싸움을 말씀하시는 듯 한데, 사실 따져 보면 정치 하는 사람들 붕당 만들어 서로 치고 박고 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이를 굳이 조선만의 특이한 현상으로 타락시킬 필요가 있을까 의심해 봅니다. 그렇다고 이를 꼭 당연시 내지는 정당화시키고자 하는 바 또한 아니나, 이러한 우리가 이전에 학교에서 배웠던 당파 싸움에 대한 백안시가 바로 일제 식민 시대 역사 교육의 연장이었다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아차 했던 충격을 여적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구한 말의 역사를 살펴 보매, 과연 유가의 가르침에 충실했던 이들이 조선을 망쳤을까 하는 의견에는 제 나름대로 꽤 강한 의심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 시대에도 공자는 시퍼렇게 살아 있었듯, 조선 시대에도 붓다는 생생했습니다. 이미 조선 초 세종 때와 특히 세조 때 불교 경전 정리가 이루어졌으니 말이죠. 물론 전 시대에 비해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허나 또 다른 문제가 있긴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까지도 논어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는 엄청 웃기는, 아니 믿기지 않는 사실입니다. 한 예를 들죠:
論語 述而篇의 子釣而不綱 익(주살 익: 지원 안됨)不射宿을 공구의 가르치는 모습을 서술한 글로 보며 해석하기를, 제자들을 한 무리로 보고 이런 저런 도그마로 무차별 이끌지 않으며 - 不綱 - 자기 스스로 깨어있는 자만을 표적 삼아 이끄신다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화살을 쏜다는 矢를 쓰지 않고 익 즉 以生絲繫矢而射也. 다시 말해 쏘고 난 후 실로 당기는 그런 쏘는 모습이죠. 근데 왜 하필이면 述而篇에 그것도 거의 갑자기 공구가 고기를 잡을 때 자연 보호 한다고 그물을 쓰지 않고 낚시를 했으며 자는 새는 쏘지 않는 그 훌륭한 동물 사랑의 정신을 보였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또 거의 대부분 학자입네 하는 사람들 이리 해석해 버리거든요. 어쨌든 이러한 공구의 교육론은 지금 우리의 자녀들한테 적용한다 해도 하등 손색이 없다 말씀드립니다. 더욱 큰 문제는 허나 이런 잘못 해석되어 있는 구석들이 논어 내에서 한 두 군데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말이 또 길어집니다. 하여튼 님이 이런 문제에도 관심을 보여 주시니 저로서는 반가울 따름이고, 그래 이리 어줍잖게 주절대는 기회를 갖습니다.
좋은 시간, 화목한 시간 누리시길 두 손 모아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