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처음 마라톤을 완주했을 때, 어느 새 강산이 변했지만 첫사랑만큼 달콤했기에 눈 앞에 아직도 선명히 아른거린다, 그 기쁨에 푹 빠져 어쩔 줄을 모르며 펄쩍 뛰고 뒹굴고 그것도 모자라 측간에 혼자 앉아 곱씹으며 단물 쭉쭉 빨아마시며 그 날 하루의 나머지를 보내고 있었다. 심지어 이는 마지막 Rigorosum을 마친 후의 그 해방된 기쁨보다 어쩌면 더 크고 복된 기쁨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만큼 감격적이었다는 말이다. 그 나이에(!) 42,195km를 완주했으니, 그것도 어떤 전문가의 도움 일체 없이 이를테면 홀홀단신 독학으로 준비한 후에. 그래 그 날 저녁 고운 마음을 주신 한님과 튼튼한 몸을 주신 어머님께 눈물을 글썽이며 고마움의 큰절을 올리고 있는데…
TV 뉴스를 우연히 보니 마침 그 날 미국 하와이 섬에서 벌어졌다는 소위 ‘철의 사람(Ironman)’ 경주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3,8km 헤엄치고 180km를 자전거 타고 달린 후 이어 마라톤 풀코스를 달려야 끝을 맺는단다. 마라톤을 완주했음에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으로 문자 그대로 의기양양하고 충천했던 그 상황에서 이 소식을 접하니 아닌 게 아니라 꿀린다는 참담한 기분을 떨구기가 적지 아니 힘들었다. 더군다나 옆에 앉아 있던 딸아이에게 ecce homo!를 외치며 내가 바로 니 아빠니라 자랑스럽지 아니 하느뇨 하며 목소리를 높였는데, 에게 이게 뭐야, 남들은 그 마라톤에 덧붙여 헤엄치고 자전거 타고 난 후에 또 달린다는데, 겨우 그 깟 뜀박질 하나 갖고… 딸아이가 내게 이런 핀잔을 실제 주었다는 말이 아니라 내 귀에 그냥 마구 울렸던 소리였다 이 말이다. 그래도 어쨌거나 Ironman이 아니라면 최소한 Woodman은 되지 않을까 싶어 자기위로하는데 여념이 없었다는 기억이 여적 생생하다.
내일 일요일 다시금 마라톤을 뛴다. 듣자하니 하와이에선 내일 또 그 망하고 흥할 놈의 Ironman 판이 벌어진단다. 이 환장하는 마음으로 질주를 해버리면 기록이 좀 나아질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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