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도 집을 나설 때마다 들리는 문 닫히는 소리 ‘찰칵’에 섬찟해 하곤 한다. 추억이고 싶지 않은 악몽이 서려 있어서다. 오래 전 유로화가 생기기 전, 그러니까 마르크화가 유통되고 있을 때 하루는 함께 한솥밥 먹는 사람들과 산책을 나가고자 했다. 일요일 점심식사 후 즐기곤 했던, 지금도 즐기고 있는 유익한 시간이다. 차량이 평일보다 훨씬 줄어든 거리를 걷는 기분은 삼삼하기까지 하다. 근데 그 날은 문이 ‘찰칵’하고 닫히는 순간 외마디 비명소리를 아울러 들었다. 함께 사는 사람이 던지는 매우 드문 외침이었다. 평소에 매우 침착하고 조용한 사람이다. 사연인즉슨, 자기열쇠를 집안에서 문고리에 그냥 꽂은 채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아버렸다는 게다. 아, 이게 무슨 대낮 청천에 날벼락이냐, 내 비록 집열쇠를 챙기고 나왔으나 그 사람 열쇠가 문고리에 꽂혀 있는 이상 문을 열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래 옆집 건너집 이웃들 죄다 불러 놓고 도움을 청했는데, 그네들 역시 나만큼 손재주가 서투른 사람들이라 카드, 막대기 등 TV나 극장에서 본대로 들은대로 시도는 해보았건만 먹혀 들지가 않았다. 영화에서 보면 참 쉽게들 열던데.
결국 열쇠공을 불렀다. 한참을 기다리니 한 호리호리한 독일남자가 찾아오더만 어느 문이냐며 자신의 의기양양한 모습을 뽐냈다. 가만 살피니 이런 경우 곤란을 당한 사람의 긴박한 심리에 꽤나 경험이 많은 친구임을 엿볼 수 있었다.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그 친구 진짜 영화에서 보던대로 가느다란 막대기 하나로 스스슥 하더만 문을 열어보이여 “Bitte schoen!” 하지 않는가. 허 참, 나도 그 짓 했는데 왜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품으려는 순간 그 친구가 계산서를 보였는데, 어, 아니 이런 생도둑질이, 지금 돈으로 200 유로가 넘는 액수였다. 그 친구 올 때까지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렸고, 오더만 1분도 채 걸리지 않아 일을 끝냈는데, 그에 대한 보수가 200유로 이상이라니 내 기가 차고 어이가 없었다. 이 계산 맞느냐 물었더만 기다렸다는 듯 요금표를 꺼내 보이며 이러 저러 해서 나온 금액이라 가리키는 모습에 뭐라 대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악은 쓰기 싫었고. 보니, 출장비 추가에 일요일이니 평일 요금 두 배를 받는다는 이 곳의 일반적인 규정에서 그런 계산이 나왔던 게다. 법대로 규정대로 산출한 액수였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분도 채 걸리지 않는 일에 200유로의 수고비를 요구하는 그 친구의 모습이 내게는 꽤나 밉상이었다. 젊잖게 말해 밉상이지 솔직히 말해 완전 사기 당한 기분이었다.
더욱 더 화가 났던 점은 허나 열쇠 챙기기를 잊었던 사람의 나태함 내지는 건망증이었고, 더군다나 일요일 반나절의 중요한 시간이 이 일로 인해 완전 난장판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하여튼 그 날 내 꽤 자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며 마음의 아수라장 판을 다듬고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무지 애를 썼다. 200유로로 내 사고 싶었던 책 서너권을 살 수 있으며 듣고자 했던 CD판 몇 장을 구입할 수 있었는데, 연극과 음악콘서트를 몇번 즐길 수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접으며 단밖에 그 사기꾼같은 열쇠공에게 그 거금을 줘야 했으니…, 이를 악물을 수 밖에.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은 오히려 태연한 모습을 보이며 어쨌든 문이 다시 열렸으니 그 열쇠공에 고맙고, 돈이야 그렇게도 쓰라고 있는 것 아니냐며 도리어 나를 탓하며 동시에 이런 불상사는 살면서 종종 일어나니 너무 안타까와 하지 마라며 위로의 손길을 보내기까지 했다. 그 소리에 내 속은 당연 한층 더 부글부글 끓어 오르고.
그래 나는 지금도 집을 나설 때마다 서너번씩 열쇠꽂이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열쇠가 꽂혀있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문을 닫는다.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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