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보느냐 물었더만 눈만 멀뚱멀뚱 말이 없었다. 당신 오래 전 헨리히와 함께 내 박사논문 읽고 점수를 매겼지 않느냐 했더만 조금 기색이 달라졌다. 함께 찾아 간 옛 철학과 여비서가 이어 말을 쏟기 시작했다. 이 양반은 이미 몇번 이 곳을 찾았다 하니 선뜻 반가와 하는 기색을 엿볼 수 있었다.
뮌헨 대학 다닐 때 이 교수 세미나를 즐겨 찾곤 했다. 칸트를 비롯한 독일고전철학과 비트겐슈타인을 주로 연구했던 사람이고, 더군다나 내 지도교수였던 헨리히의 제자이기도 했으니 나와는 어찌 보면 거의 숙명적 만남이라고나 할까. 한 때 천재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명석한 머리를 자랑했다곤 하나 대학 강단에선 인기 별로 없었다. 그렇게 사교적이지도 않았고. 때론 불과 너덧명의 학생들과 한 학기 세미나를 치뤘는데, 내게는 이 사람과 공개적이나 한적한 분위기에서 칸트나 헤겔, 피히테 등을 주제로 소위 공개토론을 할 수 있는 썩 좋은 기회였다.
근데 이 사람이 수년 전 갑자기 쓰러졌단다. 그것도 정도가 꽤 심해 코 아래론 거의 마비된 상태다. 똥오줌을 혼자 가릴 수 없고, 바른 손은 조금 움직일 수 있을 정도. 단지 의식은 분명하다. 그래 지인들을 알아보고 TV를 시청하거나 음악을 즐겨 듣는다 한다. 자기 침대 바로 옆 벽에는 칸트가 남긴 세개의 문구가 각각 액자 속에서 선을 보이고 그 위엔 프랑스 여배우 카트린 드느브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칸트나 피히테 사진이 아니고 프랑스 여배우 사진을? 젊었을 때 꽤나 좋아했던 듯싶다. 그런데 얼마나 좋아했으면 그 여배우 사진을 액자 속에 고이 간직하고 병원 자기 침대 바로 옆에 걸어 두었을까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것도 지금 환갑 넘은 사람이. 내겐 잉그리드 버그만이었다. 그렇다고 그 사람 마냥 이 여배우 사진을 액자 속에 넣어 벽에 걸어 둘 정도는 아니다. 그러다간 나와 몸 섞고 사는 사람 환장할게다.
그 사람 결혼한 적 없다. 부모님들은 돌아가셨고, 가족 친척들 또한 없다 한다. 이 전에 대학에서 함께 일했던 두어명 외엔 찾아오는 사람이 없단다. 그래도 그렇지 어찌 아무도 없을 수 있느냐 했더만 여비서 왈, 먼 친척이 있다곤 들었으나 그 사람관 연락이 전혀 없단다. 그럼 평생 철학 연구만 했단 소린가? 남긴 업적을 보면 꼭 그렇다고 말하기는 힘들지 싶은데. 아니면 무엇인가 남들이 모르는 나름대로 고히 간직한 사연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어쨌든 결과적으로 남들에게 동정을 일으키는 상황에 처해 있다. 여비서는 의식이 살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하나 나는 오히려 불행이라 하고프다. 아내한테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내가 만약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안락사를 시켜달라 부탁했다.
헤어지며 조만간 또 오겠다 했더만 그 사람 미소를 머금던데, 아 -, 내가 오래 전 대학시절 때 보았던 그 미소만큼은 거의 전신이 마비된 상태에서도 아직 잊지 않고 보이고 있음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