툇마루

뮌헨

서동철 2015. 10. 8. 17:47


볼 일이 있어 아내와 딸아이와 함께 오랫만에 뮌헨 시를 찾았다. 뮌헨은 내 독일 삶이라는 테두리 안에선 고향과 다름없다. 독일 땅에 처음 발을 디딘 후 이 곳으로 이사올 때까지 줄곧 머물렀던 곳이다. 그러니까 얼추 20년 넘게 살았던 곳이다. 내 아내를 만난 곳이고 두 딸아이들이 세상에 나온 곳이다. 물론 내 생활반경이 대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에 - 서너번 이사했는데 내내 대학 근처에 살았다 - 시 전체를 알지 못한다. 단지 내가 겪은 뮌헨에 대해선 썩 좋은 인상을 품고 있다. 이 친근한 도시를 떠난 이유 역시 싫어서가 아니고, 단지 알프스에 더 가깝게 살고파 한 짓이다.

볼 일 마치고 계획대로 피나코텍을 찾았다. 세잔, 들라끄르와, 프리드리히 등등을 다시 만나니 엄청 반가왔다. 뮌헨 살 땐 심심하면 들렀던 곳이다. 집에서 자전거 타고 얼추 오분이면 다다르는 거리였다. 그래 때론 일년치 회원권을 끊어 점심 식사 후 산책 겸 해서 들르곤 했다. 세잔이 있는 신피나코텍 뿐만 아니라 루벤스를 만날 수 있는 구피나코텍, 클레와 벡크만 등등이 머무르는 현대피나코텍, 칸딘스키와 마르크를 볼 수 있는 렌바흐하우스 등등 또한 즐겨 찾았던 곳들이다. 어디 그 뿐이랴, 옛 희랍 조각품들을 맛볼 수 있는 글립토텍, 고전음악을 만끽했던 가스타이그, 연극을 즐겼던 레지덴즈와 캄머 극장 등등이 떠오른다. 특히 대학 다닐 땐 학생할인권이 있어 금상첨화였었고. 그러고 보니 그 시절이 그립긴 하다. 물론 여기 살면서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시 맛볼 수 있는 대상들이다만 자전거로 다다를 수 있는 거리와 기차를 타고 한 시간 이상 달리는 거리의 차이라고나 할까. 그만큼 내가 게으르다는 말이기도 하고.

허나 내가 가장 즐겨 찾았던 곳은 영국공원이다. 도시 중심부에 큰 면적을 차지하고 뽐내는 문자그대로 시민공원이다. 이맘 때쯤 날씨 좋은 날이면 남녀노소 엄청 몰린다. 서로들 아우러져 공놀이, 원반던지기, 요가 등등을 즐기는가 하면 풀밭 위에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혼자 풀밭 위에 누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유를 만끽하기도 한다. 난 또한 즐겨 자전거를 타고 이자강변 쪽으로 한 바퀴 돌며 공원이 뽐내는 숨겨진 모습들을 찾곤 했다. 적지 않은 관광객들까지 합쳐 북적거리는 공원 중심부완 달리 나름대로 고요함을 맛볼 수 있는 그런 곳들이었다. 그래도 가끔식은 군데 군데 흩어져 있는 비어가르텐(야외 맥주집)에서 몇몇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맥주를 즐기곤 했다. 대학에서 곧바로 공원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 열띤 토론으로 이어진 세미나 후에 머리를 식힐 수 있었던 고마운 장소였다. 이처럼 시민들의 일상생활 속 깊숙히 박혀 구체적으로 그 생활 모습을 형성하는 큰 자리를 차지하는 공원이기에 더욱 더 사랑스러웠던 게다.

며칠 전 뮌헨시민들이 뮌헨역에 도착하는 난민들에게 보여 준 훈훈한 손님맞이 마음 씀씀새와 그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보도로 접하며 내 고향 뮌헨에 대한 자부심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툇마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촛불  (0) 2016.12.06
30년 전  (0) 2016.05.03
...  (0) 2015.05.12
삶과 죽음  (0) 2015.02.12
종북 운운  (0) 2013.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