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한글로 끄적거리기가 영 껄끄러웠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에 그럴 수도 있구나 하며 한 동안 멍한 상태에 빠졌고, 설상가상이라, 내가 속한 50대가 이 당선에 거의 결정적 역할을 해냈다는 소식에 내 자신이 부끄럽다 못해 스스로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부정의 마음에서 제대로 된 글이 나올 리가 없었다. 잘 쓰고 못 쓰고는 그 다음 문제다. 우선 글이 제대로 나와야 잘 썼는지 못 썼는지 구분할 수 있는 게다. 일기 또한 그 이후 당연 독일어로만 쓴다. 내가 알던 대한민국에 대한 총체적 부정이라고나 할까. 더군다나 지난 대선 때 하루는 김지하가 박근혜를 만난 뒤 이 여자 내공이 있어 보인다며 내지르는 소리에 그 때 그 시절 우러러보기까지 했던 사람이 시대의 쭉쟁이였음을 알았다. 아마도 박근혜가 최순실의 주문에 따라 우주의 기운 운운하니 김지하의 그 좁은 머리는 아 내공이네하고 즉답했을 지 모를 일이다. 뭐 눈에는 뭐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무학대사의 가르침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갖고 있던 김지하의 책들 모두 폐지 처분해버렸다. 단지 김수영의 그 말, 그 놈의 사진을 떼어다 밑씻개로 하자는 그의 외침대로 하자니 똥구녘 상처날까 두려워 차마 그 짓은 하지 못하겠더라.
그런데 이즈음 촛불을 보았다. 그 힘을 느꼈다. 시민들이 함께 모여 내뿜는 그 ‘내공’에 나를 다시금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자신과 가족을 포함한 내 주변의 대한민국 사람들에 대한 모멸감에 휩싸여 한글 쓰기를 거부한 내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촛불의 힘을 보고 그 힘을 이어나갈 젊은 세대들을 떠올렸다. 거부하는 마음이 함께 가자라는 마음으로 살며시 바뀌는 모습을 보았다. 못난 글이라도 쓰고픈 마음이 솟구쳤다. 고맙다 동포들아, 나를 다시 찾게 해줘서.
칸트, 헤겔 내지는 비트겐슈타인 등의 유럽 철학자들을 굳이 번역할 필요는 없다 본다. 이들의 생각들을 꼭 알리고 싶다면 우선 원본을 읽고 자기가 소화한 대로 자기 글로 전달함이 상책이라 여긴다. 독일어 원본을 읽을 수 없으면? 그럼 독일어를 먼저 배우기를 권한다. 읽지 마라는 소리로 들리는데 하며 반문하면 번역본은 읽을 필요가 없다는 뜻임을 분명히 하련다. 아니, 읽어도 당췌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 없는데 왜 읽으며 시간 을 낭비하는가 말이다. 추측컨대 칸트나 헤겔을 번역한 사람들조차 자기들이 번역한 글을 읽고 원본을 읽으며 그래도 얼추 이해했던 부분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리라 본다. 예컨대 비트겐슈타인의 소위 언어철학을 번역할 욕심이 있다면 그 욕심 당장 새누리당에 줘버리고 - 쓰레기니까 - 그 양반의 언어철학적 방법론을 우리 한글의 일상적 사용에 적용하며 풀어나가는 철학을 해 보십사 권하련다.
우리 말에 인간말종이란 욕이 있다. 이즈음 박근혜한테 던지고픈 쌍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