툇마루

Solitaire et Solidaire

서동철 2013. 1. 6. 01:17



어제부터 끊이지 않고 비가 내린다. 연말연시 우중충한 날씨가 연일 이어진다. 내 어수선한 마음에 걸맞다 싶기도 하나 마음이 이러니 날씨라도 쾌청했으면 하는 마음 또한 품는다. 평정한 마음 잃지 않고자 욕보고 있다.

설마 했는데 군사 정부 독재자의 딸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북한과 마찬가지로 남한 역시 독재자의 자식이 새 시대를 열겠다 야무진 자세를 취한다. 물론 선거와 비선거라는 작지 않은 차이가 있다만. 그렇다, 어쩌면 이 선거가 민주적이었기에 더욱 황당한 게다. 전체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그 딸을 찍었단다. 독재자의 딸이어서 이리 꼬집는 게 아니다. 이 여자가 지금까지 보인 정치적 모양새가 내가 머물고 싶고 나아가 내 후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은 그런 사회상이 아니라 그렇다. 과거에 대한 반성은 커녕 자기 아버지가 저지른 짓들 중 몇가지를 그대로 반복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게 통하는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임을 깨닳았다. 전혀 의외였다고는 말하기 힘드나 이 독재자의 딸에 대한 선망이 이 정도라곤 예상치 못했다. 특히 내가 속한 세대가 보인 선거 모습은 창피할 정도다, 쪽 팔려 몸 둘바를 모르겠다: 90%가 넘는 왕성한 투표율에 이들 중 62%가 그 여자를 찍었단다. 그러니까 내 세대 전체의 과반수 이상이 이 여자를 대통령으로 받들었다는 얘기다. 인혁당 사건 내지는 긴급조치 사건 등등은 차치하고라도 내가 30여년 전 공부했고 토론했던 도시빈민 문제, 독재 연장을 위한 분단의 논리 문제 등등은 그러니까 소수, 어쩌면 극소수에 할당된 문제였었나? 참 황당한 국민의식이다. 민주당이 진보라는 국민의식이고 보면 별 할 말은 없다만.

선거 며칠 뒤 근데 더욱 황당한 기사를 접했다. 한국 초중고 청소년들의 52% 정도가 삶의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점으로 돈을 꼽고 있단다. 부모들이 황당하니 아이들 역시 황당하지 않나 싶다. 철학이 전혀 그 힘을 쓰지 못하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철학자 스스로 자기가 철학자임을 분명히 함이 소중하다 싶다. 그렇다고 억지춘향 부리듯 악을 써야한다는 말은 아니고 철학이 삶에 있어 왜 중요한가를 차분히 설득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즈음 인도에서 벌어진 집단 강간 사건과 관련 한 인도 지식인이 하는 소리가 인도 전체에 새로 세워진 대학들이 꽤 많은데 철학과가 설치된 대학은 한 곳도 없단다. 어쩌면 비슷한 현상이 대한민국에도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과가 있어도 없는 듯하니 없느니만 못하다 여긴다.

카뮈의 페스트를 다시 읽었다. 그리고 그가 내세운 삶의 모토 Solitaire et Solidaire를 다시 한번 마음 속에 새겼다: 외로움과 연대감, 즉 혼자 있고 또 함께 움직이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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