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전투라고 불렸던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미국에서 제작되어 수입된 필름이었다. 이차대전 때 미국 군 한 소대 내지는 분대가 나찌 군과 어찌 싸우는가, 어찌 싸워 이기는가를 보여주는 줄거리였다. 미국이란 크고 좋은 나라가 적으로 삼고 죽음을 무릅쓰며 싸워 물리치고자 하는 나찌는 당연 나의 적이기도 했다. 적과의 싸움에서 항상 이기니 기분 또한 삼삼했고. 그 미군 소대장 내지는 분대장 역을 맡았던 배우가 다른 영화 속에서 악역을 맡은 장면을 우연히 봤을 때 무척 당황했다. 나찌라는 악을 물리치는 선의 영웅이 어찌 나쁜 짓을 저지를 수 있는가 말이다.
이차대전 직후 미국은 유럽 공간에서 소련과 패권 다툼을 벌려야 했다. 그 당시 이러한 기류에 휩쓸려 미국내외에서 반공산주의 바람이 세차게 불어 댈 수 있었다. 미국 내에서 벌어진 메카시 작태가 그 한 예요, 미국 외에서 씨아이에이가 주도해 조직된 우익 테러 무리 형성이 또 다른 한 예다. 이름하여 stay behind 내지는 Gladio, 때론 나토 테러조직이라고까지 불렸던 이 무리들은 만약 소련이 쳐들어올 경우 게릴라 전을 펼치는 의무를 띄고 있었다. 미국 비밀정보국은 이 무리들을 키우기 위한 교육및 인적 구성을 조직하기도 했다. 이 때 선발된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나찌들이었다. 미국은 그러니까 한 쪽에서 전범 처리하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동시에 또 다른 한 쪽 구석에선 남 보이지 않게 바로 그 전범들 중 몇몇을 선발해 공산주의국가 소련에 대항하는 테러 무리들을 조직하고 있었던 게다. 마치 이승만이 치안유지를 이유로 친일파들을 대거 기용한 모습과 얼추 비슷하다.
공산주의 국가 소련은 물론 쳐들어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우익테러 무리들은 폭탄 테러를 저질렀다. 1980년에 터진 이탈리아 볼로냐 역 폭탄 테러가 그렇고, 같은 해 뮌헨 시월축제 폭탄 테러 또한 이들의 작태라 추정된다. 그 당시 독일 보수 정부는 테러범과 우익 테러 무리와의 연계를 부정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루어진 조사들에 따르면 거의 확실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보다 더욱 가증스런 모습을 그 당시 이 곳 바이에른 주지사였던 보수-극보수 스트라우스가 저지른 역겨운 짓에서 엿볼 수 있다. 이 사람은 테러 직후 조사가 채 매듭짓기도 전에 좌익 테러라 울부짖으며 대중을 선동했다. 마치 남한의 박정희가 자신의 정권 연장을 확실히 다지기 위해 북한을 빨갱이 괴물로 그렸던 시절과 엇비슷하다.
이러한 이념에 얽매인 멍청한 짓들 배후에 미국이 웅크리고 있다. 현재 미국 공화당 내 티파티라 불리는 극보수 무리는 메카시에 버금가는 작태를 서슴치 않고 있다. 이들의 눈에는 독일 보수당에 속하는 여수상 메르켈 또한 좌빨이 분명할 게다.
뮌헨 시월축제 폭탄 테러때 자신의 자식들 넷을 잃은 독일 남자가 인터뷰에서 던진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폭탄이 터진 직후 자기 딸아이가 바닥에 쓰러져 있던데 이 아이가 하는 말이 아빠, 나 많이 아퍼 하더란다. 그러곤 죽었단다. 이 사람은 아직도 그 때 입은 상처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래 인터뷰 때 하는 말이 울먹이는 소린지 아닌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내 딸아이가 내 눈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