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이제사 왔는가 했더만 어느 새 떠나고자 호들갑이다. 더운 날도 있었다만 더위가 아쉬운 날 또한 적지 않았던 올여름이다. 처해 있는 상황이 내게 쓰는 일에 몰두할 기회를 주지 않기에 짜증 또한 많이 부렸다. 어디 그 뿐이냐, 천둥 번개에 올 산행 계획을 마구 헝크러트릴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허나 이보다는 쪼께 나아진 모습이다.
물론 어려움을 무릅쓰고 산에 오르곤 했다. 한번은 차 타고 오스트리아 중앙알프스 깊숙히 들어가 산장에서 하룻밤 묵고 호헤가이게라는 3395미터 높이의 산에 올랐다. 이 높이에도 불구하고 있던 빙하가 거의 녹아버린 지역이다. 암벽타기 난이도는 얼추 중상정도라고나 할까. 허나 무엇보다도 바닥이 보일 정도로 녹아버린 이 지역 빙하와 점점 작아지는 추세를 뚜렷이 읽을 수 있는 건너편 산악 빙하지역을 바라보며 울적한 마음을 달래야 했다. 산장 주인 왈, 불과 몇년 뒤엔 완전 녹아버릴 듯 매년 보이는 빙하가 눈에 띄게 작아진다고.
뮌헨대학 다닐 때 친하게 지냈던 철학과 여비서가 이주 뒤에 80. 생일을 맞이한다. 우리를 초대했다. 평생 노처녀로 지내는 터라 이름 앞에 프라우를 붙이지 않고 프로일라인을 붙인다. 영어로 말하자면 미쎄스 대신 미쓰를 붙이는 모습이다. 80 노인한테 이 말을 던질 때면 나 홀로 미소를 머금곤 한다. 정겨운 말 쓰임새라 여긴다. 이 양반 초대장에 붙이는 말이, 절대 이런 저런 선물 갖고 오지 마라고. 대신 각자 제일 좋아하는 시 한 수씩 준비해 읽고 듣는 시간을 함께 갖자고 제안한다. 역시 철학과 여비서다운 멋감각이다. 그래 글쓰기를 직업으로 여기는 사람이 남의 시 베껴 가는 모습이 남세스러워 내가 직접 자그마한 글을 써서 전하자 작정했다. 근데 시간이 왜 이리 빨리 가냐. 하기사 내 게으른 탓도 있겠다만, 불과 이주 밖에 남지 않았는데 한 줄도 끄적거리지 않고 있다. 서두른다.
'나눔의 철학'에 대한 생각을 모으고 있다. 철학을 하든 예술을 하든 남들과 함께 나누지 못하는 내용과 형식이라면 무에 쓸모가 있을까 하는 의심을 떨구지 못한다. 화가들 중엔 독일낭만주의의 대표적 화가라 손꼽히는 프리드리히에 대한 보다 더 집중적인 소개를 할까 생각 중이다. 좀더 많은 공부를 하겠다는 말이다. 음악과 시 또한.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