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편지

스무번째 편지 - 외로움

서동철 2011. 11. 7. 18:19

유학생활을 꾸리기 한국에서 이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마다 저는 일종의 낭만적인 모습을 그리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하고자 하는 공부를 마음껏 있음을 차치하고라도 태어나 처음 겪을 외국에서의 하루하루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한국에서는 맛보기 힘들었던 자유분방함에 대한 나름대로의 환상에 젖어서였지요. 막상 겪어보니 이러한 사전기쁨이 자아냈던 모습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음을 확인할 있었으나 다른 한편 살림살이의 적지 않은 구석에서 이와는 꽤나 다름을 맞부딪쳐야 했습니다. 어찌보면 허나 이는 겪은 사람만이 있는 그런 삶의 소중한 경험이지 싶네요.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그리기가 매우 힘든 구체적인 삶의 구석들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혼자 생활함에서 연유하는 외로움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처음에 도착해서야 품고 있던 호기심 내지는 맞부딪친 어리둥절함에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었으나 점차 자리가 잡혀 가고 하루하루의 일상성이 호기심의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하니 한국에서의 일상성과 비교를 하게 되더군요. 가족과 친구들의 냄새를 맡을 없었고 더군다나 생활 구석구석에서 피할 없었던 이질감에 시달려야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전의 호기심이 지금의 이질감으로 바뀌었다고나 할까요. 전혀 다른 문화권에 처음 발을 디딛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뒤돌아볼 여유조차 주지 않는 어리둥절함 속에서 보이는 새로운 것에 마냥 정신을 팔고 있는 모습이 호기심이라면 이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자기를 뒤돌아볼 여유를 찾으니 자기가 살았던 문화권과 새로 맞부닥친 문화권과를 서로 비교하게 되고 여기서 동시에 엿보이는 모습이 이질감이 아닐까 싶네요. 사람 사는 곳이 똑같지 하며 애써 무시하려 해도 여간해서, 아니 결코 완전한 극복을 이룰 없는 바로 문화적 이질감이라 여깁니다. 물론 지금도 이를 종종 느끼며 살지요. 어쨌든 당시엔 시간이 지날수록 때론 뼈저리게 느낄 밖에 없었던 외로움에 이러한 이질감이 톡톡히 했다고 봅니다. 그러다 보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듯 뱃속에서 느끼고픈 고향의 한국문화를 접할 때마다 포식을 하곤 했습니다. 어렴풋 알고 지냈던 한국 유학생들이 가끔씩 식사에 초대할 때마다, 특히 부부동반으로 여기까지 사람들이 식사에 초대할 빠지지않고 찾아가 엄청 먹었지요. 김치 조각 먹는 순간만큼은 이질감을 잠시나마 옆에 치워둘 있었으니 말입니다


외로움을 달래는 길은 허나 제게 있어 공부함 밖에 없다 여겼습니다. 공부하러 일부러 여기까지 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요. 그래 외로울수록 더 미친 듯 공부에 몰두했습니다. 심지어 조선시대 황희정승이 그랬다 하듯 두 눈이 피로할 때면 한 눈씩 바꿔가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곤 했지요. 몇몇 유학생들을 만나 비슷한 처지에서 나오는 푸념을 토로하며 신세 한탄 아닌 한탄을 하느니 오히려 내가 여기까지 목표를 하루라도 빨리 달성해야지 하는 욕심을 부렸던 겝니다. 어쩌면 바로 이러한 욕심을 채움이 하루하루의 일상적 모습으로 자리를 잡을 쓸데없는 외로움이 엄습할 기회를 막을 있지 않겠나 싶었고요. 또한 제가 하고자 했던 철학이라는 공부의 성격에 이러한 모습이 걸맞게 나타났다 봅니다. 외로움은 일정 의미에서 철학함에 필수이니 말입니다. 피상에 머물지 않고 이를 뚫고 의식 깊숙히 들어가 뜯어봐야 이루어지는 일이니 말이지요. 우리의 눈길을 밖으로 돌리지 말고 거꾸로 안으로 틀어 돌려야 하니 되도록 밖에서 맺어지는 관계에 인색할수록 철학함에 용이한 바탕이 이루어진다 말씀 드립니다. 물론 뒤에 철학함을 펼칠 때에는 바깥 세상 모습을 아울러 잊지 말아야겠지요. 


, 지금은 허나 일부러 외로움을 찾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