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편지에 ‘일본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최소한 이즈음 변화하는 독일 정치판을 바라보면 틀린 말은 결코 아니라 여깁니다. 엊그제 일요일에 제가 살고 있는 바이에른 주 바로 옆에 있는 바덴뷔르텐부르크 주에서 총선을 치뤘는데 여야가 바뀌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메르츠데스 벤쯔 자동차 회사 본사가 있는 슈트트가르트가 이 주의 수도입니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여야 바뀌는 모습이야 당연하다 하겠으나 이 주가 보이는 특수성에 비추어 보면 이는 실로 ‘혁명’이라 불러도 과언은 아니지 싶네요. 이 주는 이차대전 이후 지금까지, 그러니까 이번 선거 때까지 한번도 정권을 바꿔 본 적이 없는 보수 지역입니다. 58년 동안 줄곧 기민당이 주지사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니 말이지요. 그렇다고 시쳇말로 ‘꼴통보수’라 불리는 그런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보수 좋아’하는 모양새는 아니고 근거가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독일에서 바이에른 주에 버금가는 튼튼함을 자랑하고 이에 걸맞게 실업율 또한 독일에서 가장 낮은 지역이라 평가되고 있으니 주민들의 만족도를 높이기에 충분한 정치력을 자랑하고 있는 셈이었지요. 그래 ‘후쿠시마’ 이전까지만 해도 여론조사에서 자그마한 자민당과의 보수연정이 별 문제없이 계속 이어지리라는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그런데 얼추 이주 전에 이 ‘후쿠시마’가 터진 겝니다. 그렇지 않아도 체르노빌 이후 원전에 대해 아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독일 사람들에게 이는 큰 충격이었지요. 더군다나 이 보수연정 주지사는 독일 정치판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원전로비와 밀착되어 있는 정치인입니다. 심지어 원전회사 지분을 주정부 이름으로 사들였을 정도죠. ‘후쿠시마’ 직후 이 주지사가 속해 있는 당이 주도하는 연방정부에서 바로 이 주 총선거를 겨냥한 원전정치 수정안을 부랴부랴 제출하는 등 국민들의 환심을 사고자 노력을 경주했지만 이미 때가 늦었지요. 민심이 달리 흐르기 시작한 겝니다. 어디로? 바로 녹색당 쪽으로.
독일 녹색당은 30여년 전 원전설치 반대를 구호로 뭉친 일단의 반항아 무리를 주축으로 시작한 정치적 세력입니다. 그러니 ‘후쿠시마’로 불안한 민심을 잡기에 딱 걸맞는 당인 게지요. 단지 그 정도에 있어 적지 않은 정치꾼들이 놀라고 있습니다. 바덴뷔르텐부르크 주 총선을 통해 독일 정치사상 처음으로 녹색당 주지사가 탄생했으니 말입니다. 지난 주총선거율보다 얼추 10퍼센트 정도 높은 총선율을 보였는데 이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난생 처음 주선거를 치뤘다면서 녹색당을 찍기 위해 일부러 나섰다는 보도입니다. 그렇다고 녹색당이 제일당은 아닙니다. 제일당은 여전히 기민당이고, 녹색당은 제이당인데 제삼당인 사민당과의 연정을 통해 기존의 여당을 물리칠 수 있는 선거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차대전 이후 한번도 여야교체가 없었던 주에서 이 교체가 이루어졌고, 덧붙여 녹색당에서 주지사가 탄생했다는 이 정치적 사실, 이는 실로 ‘녹색혁명’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라 여깁니다. 일본의 ‘후쿠시마’가 독일의 ‘녹색혁명’을 가능케 했다는 사실을 기록해 두며 어쩌면 독일이 ‘후쿠시마’에서 ‘녹색혁명’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나라가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중국에서 원전사고가 터질 경우 불과 이삼일 내에 한반도 전역이 방사성물질에 오염되리라는 보도에 중국인들의 정치의식이 독일인들의 정치의식 반만 따라간다 해도 최소한 이보다는 낫다는 확신에 안타깝기도 하고, 허황되다 보니 괜스레 나오는 헛웃음에 멋적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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