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편지

열아홉번째 편지 - 독일 법조계의 수치

서동철 2011. 7. 29. 17:20

며칠 전 독일 뮌헨에 소재한 한 로펌회사로부터 A4 용지 열서너장의 두꺼운 봉투를 받았습니다. 뜯어보니 경고편지더군요. 덧붙여 1000유로에 달하는 벌금을 내라 하고. 우리 인터넷 연결을 통해 허락되지 않은 짓이 벌어졌음이 그 이유랍니다. 인터넷에 소위 교환시장이란 게 있다는데 이를 통해 노래나 필름등을 서로 올리고 내리받을 수 있다는군요. 나나 아내나 그런 시장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고 더군다나 우리 연결을 통해 그 시장에 나왔다는 필름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지요. 알아보니 이즈음 십대들에 인기가 좋은 헐리우드 필름이랍니다. 그런데 이 로펌회사가 어떻게 우리 실제주소를 알았을까 궁금하더군요. 그래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았는데, 이거 참, 보통 일이 아니더군요. 이러한 경고장을 통해 로펌회사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이 일년에 수백만 유로에 달한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경고산업’이라는 말로 묶어 표현되는 이 변호사사업은 수입이 짭짤하다보니 매년 성황리에 벌어지고 있다고요. 저작권보호라는 빌미로 일반 서민들의 돈주머니를 갉아 먹는 쥐새끼들이라 일단 욕부터 내뱉고 봅니다. 젊잖게 쓸려 해도 자꾸 화가 치미니 어쩔 수 없네요. 


이 ‘경고산업’이라는 장사모델 구조는 이렇습니다: 우선 노래나 영화를 제작 내지는 수입 판매하는 회사가 있고 이 상품들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해 일정 로펌회사가 계약으로 연결됩니다. 인터넷 생긴 이래 무허가로 복제하거나 내리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니 저작권보호를 위해선 이를 추적해야 하므로 로펌회사는 인터넷 주소, 소위 IP 번호를 전문으로 추적하는 회사와 또 계약을 맺고요. 이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러니까 하루 종일 일정 소프트웨어를 통해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교환시장을 들추어가며 IP 번호를 추적한 뒤 자기네들이 만든 그물에 걸린 번호들 명단을 만들어 로펌회사에 전달합니다. 로펌회사는 이 명단을 갖고 인터넷연결을 제공하는 전화회사를 찾아 실제주소를 알아내는 것이지요. 물론 이러한 개인정보를 얻으려면 법원의 허가가 필요한데 이에는 별 문제가 없다 합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일은 개인정보에 준한 민감한 성격을 띄기에 검찰이 도맡아 했는데 저작권보호에 좀더 많은 힘을 실어주기 위해 법을 바꿔 판사의 허락만 갖고도 일반 로펌회사 내지는 개인 변호사 사무실이 그 실제주소들을 얻어낼 수 있게 되었지요. 이 주소들이 알려지는대로 로펌회사들은 경고장과 돈을 내라는 독촉장을 발부하는데 꽤 악명높은 회사는 하루에 천통 이상, 일년에 수십만통을 독일 전역에 뿌리며 장사를 하고 있다는군요. 통계에 의하면 경고장을 받은 사람들중 얼추 60%가 로펌회사의 협박성 문구에 질려 요구된 액수를 그대로 지불한답니다. 두번째 경고장을 받고는 이에 20% 추가되고. 이를 통한 일년 수입이 수백만 유로에 달한다 하니 붐이라는 소리까지 나올만 합니다. 심지어 일반시장에서 노래 CD나 필름 DVD를 파는 장사보다 더 수익율이 높다하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저작권은 보호되어야 합니다. 많은 투자를 통해 제작된 음반이나 필름등이 무단복제등으로 도둑질을 당하니 새로운 투자를 하기가 힘들 정도다 하는 뉴스를 간간이 듣습니다. 시장에서 야채나 과일등 먹는 물건 사고 돈을 내듯 이러한 예술작품들을 자기 소유로 하고자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돈을 지불해야 마땅하지요. 어쨌든 이러한 건전한 시장 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바로 저작권보호법입니다. 문제는 허나 이러한 법을 구체적으로 적용함에 있어 헛점이 있다는 겝니다. 우선 위에 말씀 드린 IP번호 추적이 석연치 않다는 점이고, 두번째론 이러한 불충분한 증거를 근거로 인터넷 연결자에게 ‘도둑질’을 했다는 추정을 내세우니 이 연결자는 자신의 무죄를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는 무리한 법적 부담을 안고 있다는 점입니다. 좀 더 상세한 말씀 드립니다:

하나, IP번호 추적 문제

이미 오래 전부터 소프트웨어를 통한 IP번호 추적이 확고한 토대 위에 서 있지 않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를 행하는 회사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법적맹세까지 해가며 그 확실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한 공인 컴퓨터전문가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그렇지 않다는 의견을 조목조목 밝히고 있지요. 동시에 개선을 위한 구체적 제안까지 덧붙이고 있고요. 도둑질이라는 누명을 씌우기 위해선 보다 더 확실한 토대 위에서 일련의 법적 과정이 이루어져 한다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러한 타당한 주장이 법을 제정하는 독일 법무부나 이를 적용하는 법원에서 왜 아직까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나 이해하지 못합니다. 단지 추측할 수 있는 바는 지금의 저작권 보호법을 적용하기 위한 근본 토대가 바로 이 IP번호 추적이니 이를 행하는 현 제도를 되도록이면 건드리지 않겠다는 의도인 듯 한데, 이는 허나 법을 업으로 삼는 이들에게는 수치에 다를 바 없지요. 한 개인의 무죄를 무죄로서 인정하는 법이 100% 확실하지 않은 도둑질에 수백수천의 경고장 보냄을 허락하는 법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 법을 없애자는 말이 아니라 그 공정성을 보다 더 확고히 하자는 주장인데 무에 머뭇거릴 이유가 있습니까. 물론 그 추적하는 회사 업무가 실제 제대로 이루어졌는가 검토할 수 있겠지요. 허나 이를 위해 드는 돈이 독촉장에 쓰인 액수보다 몇 배 더 많다는 사실에 거의 실현불가능하다 인지되고 있습니다. 

둘, 무죄입증 부담문제

독일 대부분의 일선 법원들이 IP번호 추적이 일단 제대로 이루어졌다는 전제를 깔고 있으니 문제는 이에 대응하는 피고가 자신의 무죄를 보이는 증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인터넷 교환시장에서 그 짓을 했다는 시간대에 집에 없었음을 보이는 증거 말입니다. 휴가를 갔기에 집에 있는 컴퓨터를 이용할 수 없었음을 보이면 문제 없는데, 사실 이러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음은 큰 행운에 다를 바 없지요. 우연이지요. 우리의 경우 그 시간대가 새벽 세시 반에서 다섯시 반 사이라 합니다. 그것도 화요일, 그 시간대에 우리는 당연 자고 있었지요. 단지 이를 법정에서 그대로 말한다면 객관적인 증거로 채택될 리가 없습니다. 그냥 말로 하는 주장일 따름이라 여기니 말입니다. 우리 인터넷 연결에 안전장치가 설치되어 있으니 해킹 당했다 볼 수도 있으나 이 또한 단순 주장일 따름입니다. 누가 해킹을 했는지 알 수가 없으니 말이지요. 결국 우리의 무죄를 입증할 증거 제시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이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이러한 법적 구조, 피고가 자신의 무죄를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씌우는 법에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한 무죄 입증이 위에서 말씀 드렸듯 우연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모습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함을 주장하는 법조인들 또한 있으나 아직 그 소리가 크지 못한 듯합니다. 


결국 제 생각으론 어떻게든 저작권 보호법을 실용해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막아보자는 속셈인 듯한데, 이를 위해 죄없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희생해야 함은 어쩔 수 없다 여기는 모습 또한 언뜻 비치니 황당하고 동시에 화가 치미는 이즈음입니다. 처음엔 그러한 경고장을 보내며 서민들의 돈주머니를 갉아 먹는 ‘쥐새끼’ 로펌회사들에 욕을 해가며 가래를 뱉았는데, 알면 알수록 이러한 피래미들보다는 오히려 이들에게 ‘먹을 양식’을 선사하는 독일 법제도에 근본문제가 있어 보이니 실망과 더불어 이에 대항해 싸우려면 다시금 마음을 챙겨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되도록이면 세상과 일정 거리를 두고 살고자 하는데 이리 가끔씩 이마저도 허락되지 않음을 겪곤 합니다. 이런 사는 문제들을 완전 무시할 수 있어야 도인이 될 수 있을 듯한데..., 참, 깝깝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