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형,
유럽이 최고다, 세계의 중심이다 하는 어설픈 주장에 반감을 품으신다는 님의 말씀을 듣고 그냥 이렇게도 유럽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몇 자 거듭니다. 그렇다고 뭐 제가 세계 정치판에서의 유럽의 위상을 변호하고자 함은 아닙니다. 또 그럴 주제도 되지 않고요. 단지 제가 여기 저기서 주섬 주섬 엿듣고 엿보니 그렇게 어설픈 주장만은 아니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기에 용기를 냅니다.
만약에 유럽을 세계 정치판에 있어서 미국이나 중국에 대응하는 하나의 특정 세력으로 본다면, 유럽이라는 개념은 마치 한 점으로 보일 수도 있을 듯합니다. 다시 말해 그 내부의 다양함을 무시한 일률적인 한 정치 집단으로 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미제국주의 하고 한 개념으로 묶어버리듯 말이죠. 이런 의미의 유럽 내지는 유럽 공동체에는 저 역시 정나미가 떨어집니다.
허나 다른 의미의 유럽이 있습니다. 바로 그 내부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그러한 개념이죠. 이는 유럽 공동체의 점진적 확장 이념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그런 모습입니다. 각각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자랑하는 다양한 민족들이 한 공동체라는 틀 속에서 서로간의 유기체적 관계를 유지하며 공동 성장하고자 하는 의도의 표현이기도 하고요. 말이 쉽지 무지 어려운 작업입니다. 모든 구성원의 적극적인 노력 없이는 절대 성사될 수 없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그런 류의 사업이 결단코 아닙니다. 실제 정기적으로 열리는 유럽 공동체 전체 회의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각국이 한편으론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고 공동체 내에서 관철시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과 동시에 또 다른 한편 타국들과의 화협을 통해 공동체 전체의 조화를 위해 애쓰는 모습 어렵지 않게 지켜볼 수 있지요. 그래 종종 사안이 중차대한 협상 마지막 날은 각국 수뇌들 밤을 새며 티격태격 하더군요. 또 다행스럽게도 그런 연후 통상 협상안이 나옵니다.
바로 이 모습에서 일종의 모범 답안을 본다고나 할까요,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며 타국들과 마찰이 있는 경우 서로간의 진지한 협상을 통해 공동의 목표 속에 자국의 이익을 맞추는 모습 말입니다. 이러한 제법 튼튼한 내적 통일성의 모습이 있기에 작금 벌어지고 있는 밖으로의 확장 또한 가능한 것이지요. 대한민국의 경우에 해당되는 가능한 동북아시아 공동체의 모습도 이와 엇비슷하리라 상상해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곤 합니다만...
이 내적 통일성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이를 위해 얼마 전에 화폐를 통일시켰으며 (비록 영국과 스웨덴은 제외되었지만), 얼마 후엔 통일된 외교 정책을 펼치는 기구 - 유럽 공동체 대표 외무 장관 -를 만든다 하며, 작금엔 이러한 통일성을 법적으로 굳히기 위해 유럽 공동체 헌법을 제정 통과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버마스나 지젝등의 몇몇 유럽 지식인들이 앞으로의 인류 사회를 위해 유럽 공동체에서 기대하는 바는 이러한 내적 통일성을 기반으로 하는 각 나라들의 평화스런 공동 발전인 것이지요. 유럽 지상주의적인 자기 우월감의 천박한 과대망상은 결코 아닙니다. 짧게 말해 유럽 공동체를 일종의 모델 케이스로 삼자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중국, 몽고, 러시아, 일본 등과 함께 어우러지는 동북아 공동체 속에서의 대한민국, 이는 정녕 꿈일 따름일까요?
(*얼추 육년 전에 끄적거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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