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뭐인가 좀 남겨야지. 이대로 그냥 돌아갈 순 없잖아. 그래도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이 배웠는데. 쏟은 돈은 차치하고라도 논문 쓴다고 투자한 그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떠올리면 내 하시라도 주저앉아 있기가 불편해. 그래 계속 내 스스로에게 채찍질및 망치질을 해대는데, 여적 눈에 보이는 효과가 없어 탈이야. 답답해. 더군다나 시간은 왜 이리 또 빨리 가노. 휙 하며 지나가는 모습에 어 하면 벌써 일년이 훌쩍 가버리거든. 일 도중에 갑자기 죽는 복을 받는다 셈 치더라도 앞으로 기껏해야 얼추 30년 일할 수 있다 보는데, 여적 해 놓은 게 없으니 마음이 조급해질 수 밖에. 뭐? 내 박사논문? 그래 맞아, 출판되었지. 서점에서 살 수 있어. 좀 비싸긴 해도 미국 시장에도 나가 있더만.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내 좀 감추고픈 작품이야. 몇몇 철학교수들에 의해 인용되긴 했는데 내 아무리 자기자랑 좀 하려 해도 마음에서 솟구치는 뭐 그런 자부심이 뒷받침되지 않으니 너무 남세스러워 죽겄더만. 어쨌거나 그런 소위 학문적인 글 말고, 오히려 예술적인 글을 만들고 싶어. 작곡가가 곡을 만들 듯,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 말이지. 더군다나 내 글을 내 스스로 아끼고 보살피고픈 나머지 항시 옆에 두며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하는 마음이 솟구치는 그런 글을 만들고자 해. ‘오 내 새끼’ 하며 말이야. 그래야 죽어 한님께 돌아갈 때 그 먼 길 나와 속삭이며 함께 가는 동반자가 생기는 셈이잖아. 소가 되새김질 하듯 내 스스로 다시 씹고 또 되씹고픈 그런 책을 만들고 싶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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