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돼지해 겨울생 우리 금순이가 지 엄마로부터 모래판을 선물 받았다. 아이들과 놀기를 유별나게 좋아하는 지 엄마가 며칠 전부터 어울리지 않는 망치질을 하더만 결국 어제 시장에서 고운모래를 사와 집 한 구석에 모래판을 설치한 게다. 우리 금순이가 이에 당연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고. 오늘 하루종일 모래놀이 하기에 여념이 없다. 여러 종류의 케잌을 만드는가 하면 달팽이, 비행기등을 평평한 모래 위에 박고 지우고 심지어 지 아빠 거실인 산을 만들기도 한다. ‘나도 어릴 때 이런 놀이 해봐서 아는데’ 참 재미있다. 단지 우리 금순이 모래판 마냥 놀이를 위해 일부러 만든 그런 게 아니라 동네 공사판에 부어 놓은 모래덩이에서 놀곤 했다. 놀이 내용 또한 우리 금순이 마냥 이런 저런 놀이기구들을 갖고 모양을 찍고 그림을 박았던 기억은 거의 없고 그냥 맨손으로 놀았다. 대체 뭘 어떻게 했는데? 굴을 짓는 놀이였다. 모래 속에 우선 왼손을 집어 넣고 바른 손으로 그 위에 쌓인 모래를 탄탄히 다진 뒤 조심스레 왼손을 꺼내면 굴이 만들어진다. 이 때 불렀던 노랫가락이 있다: 두꺼바 두꺼바 헌집 줄께 새집 달라, da capo. 왜 두꺼비였는지, 내가 진짜 헌집을 줬는지는 상관 없었다. ‘새집’이 탄탄히 만들어지면 이를 기점으로 굴을 뚫어 또 다른 ‘새집’과 연결을 시키며 때론 엄청 큰 지역을 만들곤 했다. 덧붙여 물까지 동원할 수 있었던 경우 물길까지 곁들어 실제 두꺼비가 살만한 모양새를 갖출 수 있었다. 허나 진짜 짜릿한 순간은 그 뒤에 따랐다. 연탄아궁이 위에서 굽는 꽁치가 그 기막힌 냄새를 풍기는 저녁 때가 되어 엄마가 밥먹으라 부르면 그때까지 만들었던 그 엄청 큰 지역을 발로 짓밟으며 무지막지하게 부수는 순간이었다. 파괴의 쾌감이었던 게다. 유에서 무가 따르고 무에서 또 유가 따르는 법의 한 구체적 모습이었다. 그 다음 날 또 그 놀이 하기에 여념이 없었으니 말이다.
잣치기, 문방구, 등마타기, 닭싸움 등등으로 얼룩진 내 어린 시절이다. 아, 야구대신 짬뽕도 있었다.
'툇마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고산업’ (0) | 2011.08.10 |
---|---|
죽기 전에 (0) | 2011.07.25 |
요쉬카 피셔의 좌파관 (0) | 2011.05.20 |
옛날과 지금 (0) | 2011.05.12 |
이집트 혁명과 미국이란 나라 (0) | 2011.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