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독일에 처음 오자마자 한달 간 뮌헨 근교의 한 노부부 집에서 세들어 살았습니다. 그때 당시 이미 환갑이 넘었으니 이차 세계대전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죠. 물론 전후의 복구 작업도 직접 피부로 느끼고 겪었던, 그러니까 제게는 그 당시의 독일 모습을 생생하게 알려주었던 산 증인이었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가끔씩 함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때마다 저는 그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동방의 나라 대한민국에 대해서, 그들은 특히 저의 요청에 따라 전쟁 직후에 직접 겪은 경험담을 제게 들려주었습니다.
"전 후 부족한 생활물자를 아끼고자 독일인들이 얼마만큼 검소한 생활을 했는지는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저 역시 한국에서 중학교 다닐 때 한 선생님으로부터 이에 준한 한 구체적인 예를 들었지요. 그 분 말씀이 독일인들이 전 후에 얼마나 검소했느냐 하면 담배를 필 때 성냥개비 하나라도 아끼기 위해 최소한 세 사람들이 모인 연후에야 비로소 성냥개비에 불을 당겼다는데 이게 사실입니까?"
제가 하루는 그 할아버지와 커피와 케익을 나누며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나름대로 진지한 질문을 드렸기에 그에 걸맞는 진지한 대답을 기다렸건만, 어라, 이 분은 듣자마자 폭장대소를 터뜨리시니 제가 무척 당황해 지더군요.
"전 쟁이 드디어 끝났다는 기쁨과 앞으로 어찌 살꼬 하는 두려움이 섞였던 힘든 시절 우리 고생 진짜 많이 했지요. 그 당시 어려웠던 바야 세상 삼척동자도 다 아는 엄연한 사실이나 그렇다고 성냥 한 개비 아낀다고 그런 집단 행동을 벌렸다는 이야기는 과장이 꽤나 심하군요. 아니예요, 그 정도로 검소하지는 않았다 해야 할까요? 아무튼 저는 그런 모습을 보지도 못했고 직접 행한 적도 없습니다. 그래 많이 황당해 웃었으니 용서하시구료."
이는 어쩌면 외국에 나와야 비로소 볼 수 있는 국내의 여러 모습들 중 하나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가 어릴 때 경제적으로 매우 취약했던 대한민국 사회에서 검소하고 절약하는 생활이 당연 미덕임에 이를 학교에서 강조하고 가르치는 데에야 무에 잘못이 있겠습니까? 단지 그 전달 방법에 있어 외국에 대한 잘못된 믿음 즉 미신을 바탕으로 위와 같은 과장된, 어쩌면 누군가가 지어낸 상상의 산물을 실제 그런 양 표본으로 삼는 데에는 문제가 다분합니다. 아니 그런 일이 실제 있었다손 치더라도 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인 바 이를 전체 독일인의 모습인양 크게 부풀려 본받자 함은 가히 그 할아버지의 웃음 섞인 질타를 받아 마땅합니다. 나아가 이에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잘못된 사고 방식의 전달이라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어쩌면 무지의 사대주의까지 자아낼 수 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면 교육에 있어 보다 더 넓고 깊은 배려가 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런데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와 얼추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으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판매부수로 볼 때 최상위권에 속한다는 모 신문사의 한 기자가 독일에 파견되어 독일인들의 이런 저런 생활 모습들을 보도하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머릿기사로 "독일인들의 정직성"이 란 글이 눈에 띄더군요. 이 기자는 독일의 한 도시에서 직접 지하철을 타 본 후 독일인들이 매우 정직하다는 칭찬의 말을 서슴치 않고 합니다. 검찰원도 없는 지하철 역에서 모든 독일인들이 스스로 표를 끊는 모습을 보았다는 겝니다. 그러니 얼마나 정직하냐는 말입니다. 이에 반해 서울의 지하철 역에서 이러한 모범 시민의 모습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느냐며 이런 독일인의 정직함을 배우자고 울부짖습니다. 이런 류의 무리한 주장을 일반화의 오류라고도 부릅니다만, 유럽에 특(별히)파(견)되어 어느 날 하루 우연히 마주친 지하철 역의 모습을 전체 독일인들의 한 전형적 모습으로 탈바꿈시키는 우스꽝스러운 짓을 말합니다. 아니, 제가 직접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니며 불시검찰원에게 걸려 이름과 주소를 불며 내지는 벌금을 무는 장면을 목격한 적도 수십번이니 말입니다. 그 기자가 주장하듯 독일인들이 하나같이 그리 정직하다면 버스나 지하철에 붙어있는 무임승차 시 40유로의 벌금을 물으니 돈 내고 타라고 주문하는 포스터는 어찌 설명이 될 수 있습니까?
좋은 점 좀 보고 배우자 하는 의도야 어찌 나쁘다 하겠습니까만 이런 교육적인 의도로 외국을 알리고자 할 경우에 우선 해당국의 실제 사정을 제대로 알고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릇된 사대주의 빠져 배워서 잘되자 하는 의도가 스스로를 허망히 잃어버려 배워서 못되는 큰 죄를 짓게 되는 겝니다.
덧붙여 사람의 정직성을 본으로 삼자는 보도를 꼭 하고 싶다면 저 같으면 오히려 우리나라 강원도나 경상북도 산골의 사람들을 찾겠습니다. 이 곳에서 제가 겪은 한국 사람들은 왜 그리 한결같이 정직한지 말입니다.
"전 후 부족한 생활물자를 아끼고자 독일인들이 얼마만큼 검소한 생활을 했는지는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저 역시 한국에서 중학교 다닐 때 한 선생님으로부터 이에 준한 한 구체적인 예를 들었지요. 그 분 말씀이 독일인들이 전 후에 얼마나 검소했느냐 하면 담배를 필 때 성냥개비 하나라도 아끼기 위해 최소한 세 사람들이 모인 연후에야 비로소 성냥개비에 불을 당겼다는데 이게 사실입니까?"
제가 하루는 그 할아버지와 커피와 케익을 나누며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나름대로 진지한 질문을 드렸기에 그에 걸맞는 진지한 대답을 기다렸건만, 어라, 이 분은 듣자마자 폭장대소를 터뜨리시니 제가 무척 당황해 지더군요.
"전 쟁이 드디어 끝났다는 기쁨과 앞으로 어찌 살꼬 하는 두려움이 섞였던 힘든 시절 우리 고생 진짜 많이 했지요. 그 당시 어려웠던 바야 세상 삼척동자도 다 아는 엄연한 사실이나 그렇다고 성냥 한 개비 아낀다고 그런 집단 행동을 벌렸다는 이야기는 과장이 꽤나 심하군요. 아니예요, 그 정도로 검소하지는 않았다 해야 할까요? 아무튼 저는 그런 모습을 보지도 못했고 직접 행한 적도 없습니다. 그래 많이 황당해 웃었으니 용서하시구료."
이는 어쩌면 외국에 나와야 비로소 볼 수 있는 국내의 여러 모습들 중 하나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가 어릴 때 경제적으로 매우 취약했던 대한민국 사회에서 검소하고 절약하는 생활이 당연 미덕임에 이를 학교에서 강조하고 가르치는 데에야 무에 잘못이 있겠습니까? 단지 그 전달 방법에 있어 외국에 대한 잘못된 믿음 즉 미신을 바탕으로 위와 같은 과장된, 어쩌면 누군가가 지어낸 상상의 산물을 실제 그런 양 표본으로 삼는 데에는 문제가 다분합니다. 아니 그런 일이 실제 있었다손 치더라도 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인 바 이를 전체 독일인의 모습인양 크게 부풀려 본받자 함은 가히 그 할아버지의 웃음 섞인 질타를 받아 마땅합니다. 나아가 이에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잘못된 사고 방식의 전달이라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어쩌면 무지의 사대주의까지 자아낼 수 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면 교육에 있어 보다 더 넓고 깊은 배려가 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런데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와 얼추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으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판매부수로 볼 때 최상위권에 속한다는 모 신문사의 한 기자가 독일에 파견되어 독일인들의 이런 저런 생활 모습들을 보도하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머릿기사로 "독일인들의 정직성"이 란 글이 눈에 띄더군요. 이 기자는 독일의 한 도시에서 직접 지하철을 타 본 후 독일인들이 매우 정직하다는 칭찬의 말을 서슴치 않고 합니다. 검찰원도 없는 지하철 역에서 모든 독일인들이 스스로 표를 끊는 모습을 보았다는 겝니다. 그러니 얼마나 정직하냐는 말입니다. 이에 반해 서울의 지하철 역에서 이러한 모범 시민의 모습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느냐며 이런 독일인의 정직함을 배우자고 울부짖습니다. 이런 류의 무리한 주장을 일반화의 오류라고도 부릅니다만, 유럽에 특(별히)파(견)되어 어느 날 하루 우연히 마주친 지하철 역의 모습을 전체 독일인들의 한 전형적 모습으로 탈바꿈시키는 우스꽝스러운 짓을 말합니다. 아니, 제가 직접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니며 불시검찰원에게 걸려 이름과 주소를 불며 내지는 벌금을 무는 장면을 목격한 적도 수십번이니 말입니다. 그 기자가 주장하듯 독일인들이 하나같이 그리 정직하다면 버스나 지하철에 붙어있는 무임승차 시 40유로의 벌금을 물으니 돈 내고 타라고 주문하는 포스터는 어찌 설명이 될 수 있습니까?
좋은 점 좀 보고 배우자 하는 의도야 어찌 나쁘다 하겠습니까만 이런 교육적인 의도로 외국을 알리고자 할 경우에 우선 해당국의 실제 사정을 제대로 알고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릇된 사대주의 빠져 배워서 잘되자 하는 의도가 스스로를 허망히 잃어버려 배워서 못되는 큰 죄를 짓게 되는 겝니다.
덧붙여 사람의 정직성을 본으로 삼자는 보도를 꼭 하고 싶다면 저 같으면 오히려 우리나라 강원도나 경상북도 산골의 사람들을 찾겠습니다. 이 곳에서 제가 겪은 한국 사람들은 왜 그리 한결같이 정직한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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