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편지

열네번째 편지 - "서방님!"

서동철 2011. 2. 7. 17:22

 ,


지난 결혼식에서 뵙고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유독히 더웠던 지난 여름이었던지라 작금의 청명한 가을 하늘이 더욱 높아보입니다

평안하시죠?

저희 역시 신혼 여행을 제주도에서 즐겼습니다. 독일에까지결혼의 으로 알려져 있음에 걸맞게 꽤나 많은 신혼 부부들이 서성거리더군요. 저희도 다릅니까? 남들 하는 다하고, 사진 찍을 빠짐없이 찍고, 이도 지정 장소들이 있더만요, 그리고 돌아올 참이었습니다. 제주 비행장에서 벌어진 사건(?) 보도해 드립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여권 검사를 하더군요. 그것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남녀를 구분하더라고요. 그래 어쩔 없이 한국말이 서툴어 불안해 하는 아내와 잠시 헤어질 밖에 없었죠. 그래 가능한한 재빨리 검사국을 통과해 여자 전용 검사국에 달려 갔더만, 다행히 여자 승객들이 많아 그런지 줄이 밀려 있었습니다. 서너번 뒤에 아내 차례였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갑자기 저를 부르더만요. 허나 뭐라 불렀는지 아십니까? 그것도 백주 대낮에 소리로


서방님!” 


하더군요

, 순간, 당연하죠, 주위의 모든 사람, 승객과 검사국 직원등을 포함한 젊은 여자 늙은 여자 모두 함께 폭소 내지는 소리나지 않는 함박 웃음을 짓더군요. 손으로 입을 가리며 킥킥거림이 꽤나 오랫동안 이어졌지요. 그도 그럴 것이 서양 여자가 그것도 지금 시대에 한국 남자한테서방님!”하니 말이죠. 사실 나중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아내 역시 표현이 지금의 한국에서 어찌 들리는지는 저한테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자신도 모르는 새에 급하다 보니 그냥 집에서 저와 둘이 있을 때에 하는 소리를 그대로 내뱉은 것이었습니다. 검사 당국의 여직원이 여권을 요구했던 , 제가 이를 갖고 있었거든요. 그러니 사람 얼떨결에 급하게 내게 구원의 손길을 뻗쳤던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와중에서 자신 지금도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바로 자신에 의해서 말이죠. “서방님!”이란 소리를 들은 저는 물론 주위의 모든 여자들이 함박 웃음 짓는 모습을 눈에 있었죠. 특히 아내의 바로 뒤에 계시던 하얀 모시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신 시골 할머니의 환하디 환한 웃음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침착했지요


~” 


정도로 말이죠. 천연덕스러웠다고 할까. 이에 걸맞게 아주 자연스럽게 - 어찌 보면 서방님다운 기풍과 늠름한 자세로 - 아내한테 걸어가 여권을 건네 주었습니다. 아니 성격 급하고 평소에 그리 쉽사리 흥분 잘하고 하는 놈이 이러한 어찌 보면 극히 난처한, 아니 창피하고 남세스럽다고 할까, 하여튼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신통하게도 지극히 침착했으니 이를 제가 어찌 인간적으로 이해할 있겠습니까? 신의 계시가 내렸다면 몰라도.  

아내는 물론 아무 문제 없이 통과되었고, 저와 아내는 그칠 모르는 관중과 팬들의 함박 웃음 내지는 킥킥 거리며 웃는 얼굴들을 아쉽게도 뒤로 한채 비행기 탑승구로 걸어갔죠. 어떻게요? 팔짱을 끼고, 아주 정답게, 신혼 부부 사이의 사랑이 물씬 흔껏 풍기는 그런 다정한 모습으로. >>서방<< >>각시<< 전형적 모습으로

저는 허나 떠서 창피에 얼굴 빨개지기는커녕 고개를 바짝 쳐들고 아내를 넓은 가슴에 껴안은채 두서너번 뒤돌아 보며 관중의 웃음에 은근한 붓다의 미소로 답을 보냈죠. 그런데 순간 눈에 비친 적지 않은 젊은 예비 각시들의 눈빛은, 확신컨대, 부러움에 주눅이 들은 그런 눈빛들이었습니다

나는 언제나서방님!‘하고 불러 볼까나...’ 하고 말입니다


나중에 들은 소문에 의하면 희대의 사건이 제주 신문 문화면 기사로 대서특필되었다 합니다만, 제가 확인은 하지 못했습니다.

, 지금 옆에서 아내가서방님, 식사하시이소하고 다소곳이 부르는군요


~, 그리어, 갈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