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편지

열다섯번째 편지 - ”국방부 장관은 사기꾼”

서동철 2011. 2. 28. 20:09

며칠 전 이 곳 독일 연방의회에서 야당 당수가 현 독일 국방부장관을 두고 내지른 욕입니다. 39살의 이 젊은 장관은 이 외에도 ‘거짓말쟁이’, ‘도둑놈’등의 욕을 들어야 했는데, 이유인즉슨 지난 2007년에 이 친구가 바이로이트 법과대학에서 취득한 박사학위가 사기였음이 밝혀진 때문입니다. 정식으로, 그것도 최고점수로 취득은 했긴 했는데 제출한 박사논문이 70퍼센트 이상 남의 글들로 짜깁기한 허드레 글이었음이 며칠 전 브레멘 대학의 한 교수가 밝혀냈지요. 남의 글을 복사해 놓고 그 원문 출처를 알리지 않았으니 마치 자기가 쓴 글인양 사기친 결과입니다. 저 역시 박사논문 써 봐서 아는데 - 이즈음 대한민국에선 이런 말 구사가 거의 유행하다시피 돌고 있다 들었습니다. 특히 대통령을 비롯 여권 인사들이 아주 아주 즐겨 쓴다는데, 그래 저도 한번 살짝 - 물론 학위 논문을 쓸 때 이런 저런 글들을 인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허나 이 경우 그 출처를 반드시 밝히도록 규정되어 있지요. 그렇지 않은 경우엔 도둑질과 다름 없으니 말입니다. 근데 이 친구가 베낀 모습을 살펴보면 그 정도에 있어 기가 찰 노릇입니다. 논문 가장 앞에 내놓는 소위 ‘이끄는 글’에서조차 한 스위스 신문 기사를 그대로 베꼈다 하니 말입니다. 일간지 내지는 주간지 기사들은 물론 심지어 대학생들 세미나 논문도 베꼈다 하고 나아가 연방의회에서 나라 정치를 위해 일하는 학자들의 연구결과 또한 그대로 훔쳤다 합니다. 이에 야당에선 당연 국민 세금으로 개인의 영달을 위한 논문을 작성했다며 삿대질 해대고 있지요. 결국 야당은 모범이 되어야 할 장관으로서 자격미달이다, 어느 구석에서 신뢰를 찾겠느냐, 더군다나 국방부에 속한 대학들의 우두머리로서 부끄러운 짓을 저질렀으니 물러나야 한다 외치고 있습니다. 본인은 물러나지 않겠다 버티고, 또 여당은 이 버팀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무슨 근거로? 


이들은 학적 작업에서 저지른 잘못이 국방부장관으로서 치루는 일에 별 영향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납득키가 힘들지요? 물론 국방부장관이 치루는 일에 법학박사 일이 관련된 바가 내용적으로 드물다 하겠으나 지금 문제는 국방부장관의 사람됨이 모자라 장관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다는 데 있으니 말입니다. 그것도 전통적으로 신뢰, 정직 등 근본적인 사람됨에 많은 가치를 매기고 있는 보수당에서 이를 정면으로 어긴 사람을 어떻게든 장관자리에 묶어 둘려 하니 지금 적지 않은 비판을 매일 듣고 있지요. 언론에서 일하는 정치꾼들에 의하면 이는 다가올 몇몇 주선거들을 앞두고 여론조사 결과 독일 정치인들 중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 친구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해서라 합니다. 울며 겨자먹기식이란 말이지요. 더 큰 문제는 허나 이를 통해 독일 정치의 전통에 작지 않는 상처를 입힌다는 사실입니다. 일부 비중 있는 신문들은 독일 정치에 큰 획을 그었다고까지 떠들고요. 물론 부정적인 뜻에서. 


이젠 학계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아직까지도 의도적으로 그런 베끼는 짓을 저질르지 않았다는 이 친구의 주장에 바로 이 친구가 다녔던 학과의 한 교수는 - 이 친구 지도교수의 후임 교수입니다 - ‘사기꾼’이라는 표현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 외 이름 나 있는 변호사들은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이 친구가 의도적으로 사기짓을 했음을 법정에서 증명할 수 있다 강조하고요. 아닌 게 아니라 400쪽 넘는 박사논문의 70퍼센트 이상이 남의 글인데 이를 어찌 의도적으로 짜깁기 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 저 역시 그 친구의 뻔뻔함에 혀를 내두를 도리 밖에 없습니다. 위에 그 교수는 그래 이 친구가 아예 처음부터 짜깁기를 계획하고 논문을 만들었다 주장하지요. 나아가 장관 일과 학적 일을 애써 구분해 가며 이 친구를 감쌌던 독일 현 여수상에 20000명이 넘는 독일 박사코스 중인 사람들이 공개편지를 보내 정치적인 목적으로 독일 학문의 명예와 전통을 훼손했음을 반성하라는 항의를 했다 합니다. 박사논문을 만듦에 있어 남의 글을 훔치는 도둑질을 과소평가한다는 말이지요. 이런 짓을 가볍게 넘길 때 학문의 미래가 어두울 수 밖에 없다는 학자로서 당연한 주장을 한 셈입니다. 


근데 이런 사기짓이 발칵난 뒤에도 이 친구가 독일 국민들 사이에서 누리는 인기는 수그러들지 않는데, 이는 많은 독일 사람들이 박사논문에서 남의 글을 훔치는 짓이 얼마나 흉측한 짓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대학은 커녕 독일 김나지움을 겪지 않은 사람들이 여적 독일 국민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니 그럴 수도 있다 여깁니다. 단지 독일의 비중있는 신문사들에서 일하는 기자들은 이를 알기에 연일 비판을 아끼지 않고 있지요. 


이 국방부장관은 그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 귀족가문입니다. 지금도 억대 부자로 한 성에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합니다. 그래서 그런가 아직까지 이런 저런 혹독한 비판에 버티고 있습니다. 물론 당의 뒷받침도 있지만. 허나 같은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한 야당인사가 말하듯 나 같으면 그런 짓이 만천하에 밝혀졌을 경우 부끄러워서라도 집 문 밖에 한 발자국도 내딛기 힘들었을 텐데, 이 귀족 친구는 그런 부끄러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잘못까지도 자신의 정치적 생명 연장에 이용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구역질 올라옵니다. 그래 가래를 뱉고 말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