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독일 사민당이 녹색당과의 연정을 통해 독일 정치판에서 안방 문고리를 꽉 쥐고 있을 때 벌어진 일이다. 당시 중부 독일 도시 만하임에서 열린 사민당의 한 집회에서 그 안방의 우두머리 슈뢰더 수상이 한 독일남자한테 느닷없이 귀싸대기를 얻어 맞았다. 귀싸대기? 그러니까 일개 국민이 수상한테 뼘따귀를 후려쳤다는 말이다. 그것도 공개석상에서. 아니 테러 방지한다고 눈에 피멍드는 세상에서 어찌 이런 해괴한 테러가 저질러질 수 있느냐 의아해 하겠다만, 평소 일반 국민들과 되도록 가까운 접촉을 즐기고자 하는 그 수상의 행동을 떠올리건대 속사포적 귀싸대기 테러는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았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어쨌든 졸지에 봉변 당한 독일 수상, 진짜 아팠단다. 물론 그 테러범은 잡혔다. 옌스 암모서라 불린단다.
사건 후 석달 뒤 법정판결이 내려졌는데, 4개월의 집행유예에 100시간의 공익봉사활동이라는 벌을 받았다. 검사는 허나 6개월에 150시간을 선고했다 하는데, 판사 왈, 피고의 생활환경이 그의 지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를 혼란의 도가니로 빠뜨렸다는 정상을 참작했다 한다. 어떤 생활환경?
옌스는 그 때 나이 52살 베를린 출생이다. 그는 선생이 되고자 사범 대학에서 공부를 마쳤고 실습 또한 치뤘다. 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자리는 자기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자기가 하고픈 일을 하면서 삶의 틀을 짠다는 꿈을 현실로 채울 수 없었던 게다. 결국 대학 졸업 후 십년이 지나도록 옌스는 백수 노릇을 할 도리 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가 스스로 말하듯 자기 삶에서 그 어떤 뜻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베를린을 떠나 산으로 들어갔다. 산 속에서 살며 어떻게 하면 삶에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산책을 즐겼고, 유일한 외부로의 창구인 TV 또한 연일 꼼꼼히 지켜볼 수 있었다. 바로 이 TV를 통해 옌스는 독일의 현 정치인들이 무슨 말들을 지껄이는지 들을 수 있었고 그네들이 건네는 공약들을 새겨 담았다. 한 마디로 희망찬 미래가 다가온다는 말이었다. 정치인들은 여야 구분없이 거의 이구동성으로 다 잘 되리라는 약속 아닌 약속을 난발하는데, 옌스 개인의 경우에는 이러한 분홍빛 청사진이 결코 해당이 되지 않으니 이로 인한 이질감으로 뒤범벅된 불행을 견디기가 무척 힘들었다. 이 와중에 한 순간 어쩌면 자신이 직접 나서서 필요한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유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으며, 이를 위해 그는 사민당에 입당한 후 곧장 당 지도부에 편지를 냈는데, 자기가 더 훌륭한 수상이라는 주장과 함께, 그에 따라 독일인들이 자기를 필요로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옌스가 법정에서 스스로 고백하듯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는 일종의 ‘정치화’되는 인간적 변형의 고통을 겪은 셈이었다. 물론 그의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당 내에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현실 감각을 완전 상실한 자로 여기며 아예 상대조차 해주지 않았다.
앞에는 서독 사민당의 최고봉이자 독일 동방외교의 주역이었던 빌리 브란트의 사진이, 그리고 뒤에는 자신의 은행 계좌 번호가 박힌 흰색의 티셔츠를 입고 법정에 등장한 옌스는 자신이 저지른 폭력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단호히 말했다. 자기가 독일 수상에게 귀싸대기를 날린 행동은 자기 개인을 위해 한 짓이 아니라 작금 사백만 이상의 독일 실업자들을 위해 저지른 정치적 행동이라며 당당한 모습을 뽐내는 듯 보였다. 그러니까 자기는 이 사백만 실업자들을 대변하고 있으며 나아가 이들 전체를 위한 자기희생적 투사라고 여겼던 게다. 독일 수상의 경제 정책에 대한 책임을 귀싸대기를 통해 쪼께 험악한 모습으로 질타한 셈이라는 말이다.
어쩌면 이는 정치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옌스 스스로 법정에서 말하듯 자신의 출생과 함께 시작된 문제일 수 있으며, 나아가 주위에 자신과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지나 가족들이 없다는 외로움에서 그 엉뚱한 짓의 불씨를 찾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판사가 정상 참작을 이에 근거 짓듯 말이다.
그런데, 이런 얼토당토 않은 불경스런 작태가 만약 우리의 대한민국에서 터졌다면 과연 어떤 판결이 내려졌을까? 모르면 몰라도 국가 원수 모독죄로 최소한 징역 10년은 먹었으리라는 강한 의심을 떨구기 힘들다. 물론 국가보안법에는 전혀 저촉이 되지 않는 범죄 행위라는 판결이 내려지면 그나마 다행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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