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편지

아홉번째 편지-부자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

서동철 2010. 4. 10. 20:17

2004 8 26일자 쥐드도이췌 신문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독일 도르트문트 출신의 남자가 지난 1 3일의 복권 당첨에서 벌은 9,1 백만 유로의 돈을 어찌 할까 결정을 못하고 10주간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불쌍한 사람들을 도우는 자선 사회복지 기구를 창설하는데 몽땅 투자하기로 했다 합니다. 

사람은 갑자기 쏟아진 돈더미에 눌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불안해 한게죠. 졸지에 백만장자가 상황에 자신이 과연 적응을 있을까, 자기가 지금까지 지녀온 일상 생활의 모습을 그대로 지킬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매 불안해졌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어쨌든 특히 사회 복지 기구를 창설함에는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에 결국엔 선뜻 방향으로의 결정을 보았다 합니다. 불행(?) 남자와 상담을 로또 회사의 담당 직원은 덧붙여 전하길, 그는 복권 당첨 전에 이미 집과 자동차를 소유하는 평범한 생활을 누리기에 물질적인 부족이 없는 생활을 누리고 있으며, 직장에서 또한 흡족감과 함께 일하고 있다 합니다. 직원은 또한 적지 않은 당첨자들이 당첨금의 일부를 헌금하는 사례는 종종 있으나 사람처럼 극렬한 경우는 처음 겪는다는군요. 단지 특기할만한 점은 적지 않은 당첨자들이 당첨금을 서둘러 찾기 보다는 오히려 찾을 때까지 의도적으로 시간적인 여유를 부린다 합니다. 추측에 횡재에 대한 기쁨을 가능한 서서히 맛보기 위해서인가 싶어요. 


하여튼 富와는 이런 식으로 인연이 사람들이 흔하지는 않으나 있긴 있나 봅니다. 주어진 부에 어쩔 줄을 몰라하며 이를 거부하는 몸짓으로 대하는 그런 경우 말입니다. 철학자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죠. 언뜻 떠오르는 양반이 비트겐슈타인입니다. 양반은 원래 부자 집안에서 태어나 유산 상속을 무지 많이 받았는데 쏟아진 물질적인 부를 담아낼 마음의 그릇을 품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자본가 부자들을 경멸한 공산당원은 아니었고요, 다른 부자들과, 특히 자신의 부자 누나와는 아무 문제없이 부에 얹혀 함께 즐겼으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체에 대한 적개심은 없었다 봐야죠, 단지 자기에게 안겨진 부에는 정상적인 생활을 없을 정도로 맥을 없었다는 기묘하기도 하고 그럴 듯하기도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몽땅 나눠주고 없이 살았어요. 이런 나눔의 혜택을 입은 사람들 중에는 예술가들 또한 적지 않이 있었는데, 예컨대 트라클, 릴케, 라스커-쉴러, 헷커, 코코쉬카 등등이 그들이죠. 어쩌면 이리 나누고 베풀고 없이 살다 보니 그런 훌륭한 철학이 나올 있지 않았을까 망상을 해봅니다. 


저도 없이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