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 26일자 쥐드도이췌 신문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독일 도르트문트 출신의 한 남자가 지난 1월 3일의 복권 당첨에서 벌은 9,1 백만 유로의 돈을 어찌 할까 결정을 못하고 10주간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불쌍한 사람들을 도우는 자선 사회복지 기구를 창설하는데 몽땅 투자하기로 했다 합니다.
이 사람은 갑자기 쏟아진 돈더미에 눌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불안해 한게죠. 졸지에 백만장자가 된 상황에 자신이 과연 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 자기가 지금까지 지녀온 일상 생활의 모습을 그대로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매 불안해졌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어쨌든 특히 사회 복지 기구를 창설함에는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에 결국엔 선뜻 이 방향으로의 결정을 보았다 합니다. 이 불행(?)한 남자와 상담을 한 로또 회사의 담당 직원은 덧붙여 전하길, 그는 복권 당첨 전에 이미 집과 자동차를 소유하는 등 평범한 생활을 누리기에 물질적인 부족이 없는 생활을 누리고 있으며, 직장에서 또한 흡족감과 함께 일하고 있다 합니다. 그 직원은 또한 적지 않은 당첨자들이 당첨금의 일부를 헌금하는 사례는 종종 있으나 이 사람처럼 극렬한 경우는 처음 겪는다는군요. 단지 특기할만한 점은 적지 않은 당첨자들이 당첨금을 서둘러 찾기 보다는 오히려 찾을 때까지 의도적으로 시간적인 여유를 부린다 합니다. 추측에 횡재에 대한 기쁨을 가능한 한 서서히 맛보기 위해서인가 싶어요.
하여튼 富와는 이런 식으로 인연이 먼 사람들이 흔하지는 않으나 있긴 있나 봅니다. 주어진 부에 어쩔 줄을 몰라하며 이를 거부하는 몸짓으로 대하는 그런 경우 말입니다. 철학자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죠. 언뜻 떠오르는 양반이 비트겐슈타인입니다. 이 양반은 원래 부자 집안에서 태어나 유산 상속을 무지 많이 받았는데 그 쏟아진 물질적인 부를 담아낼 마음의 그릇을 품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자본가 부자들을 경멸한 공산당원은 아니었고요, 다른 부자들과, 특히 자신의 부자 누나와는 아무 문제없이 그 부에 얹혀 함께 즐겼으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부 그 자체에 대한 적개심은 없었다 봐야죠, 단지 자기에게 안겨진 부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맥을 출 수 없었다는 기묘하기도 하고 그럴 듯하기도 한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몽땅 나눠주고 없이 살았어요. 이런 나눔의 혜택을 입은 사람들 중에는 예술가들 또한 적지 않이 있었는데, 예컨대 트라클, 릴케, 라스커-쉴러, 헷커, 코코쉬카 등등이 그들이죠. 어쩌면 이리 나누고 베풀고 없이 살다 보니 그런 훌륭한 철학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망상을 해봅니다.
저도 없이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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