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가 16세기에 우리에게 남긴 '수상록'을 온전히 번역한 독일책이 얼추 10년 전에야 비로소 세상에 나왔다. 번역자는 Hans Stilett, 그는 듣자하니 10년 이상 이에 집중해 일을 했다 한다. 첫 선을 보인 후에도 이 번역은 지금까지 계속 부분적 수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만큼 신경을 쓰며 애지중지 가꾼다는 소리다. 스틸렛의 책을 읽으면 그가 어느 정도 정성을 들여 생각옮기는 일을 했는가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다. 예컨대 독일어의 소위 율동을 최대한 살리고자 애쓴 흔적이 번뜩인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이 독일어로 제대로 번역되어 세상에 나온 지도 역시 얼마되지 않는다. 물론 그 전에 지난 세기 초부터 이런 저런, 그것도 꽤 유명한 출판사들의 번역물들이 있었지만 원 저자의 뜻이 제대로 그리고 성실히 옮겨졌다는 평을 들을만한 번역은 지금부터 불과 15년 전에 Swetlana Geier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번역을 통해 도스토예프스키가 비로소 언어예술가로서 독일어권에 제대로 소개되었다는 극찬을 들을 정도다. 이를 대변이나 하듯 그 작품의 제목 또한 그 때까지 독일에서 일반적이었던 'Schuld und Sühne' 대신 'Verbrechen und Strafe'로 바꾸었다. 전자는 후자보다 도덕적 냄새가 지나칠 정도로 진하게 풍기니 작품의 내용에 걸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의 '죄와 벌'은 어찌 보면 이 둘 사이 중간쯤에 서있지 않을까 싶다.
번역이 뛰어나다고 소문난 독일 역시 여적 할 일이 수북히 쌓여있는 모습이다.
번역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건넬 능력이 내게 없다. 작품번역을 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는 점은 내 이런 일을 해보고자 하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하고는 싶은데 이런 저런 이유로 여적 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니라 하고 싶지 않으니 이 일을 손에 잡지 않는다. 올라가지 못 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 했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Celan이나 Johnson 역시 번역일을 남겼는데, 그들의 번역물에선 그들 작품에서 맡을 수 있는 독특한 향내음을 코에 담기 힘듦을 감지할 수 있음에 원저가 번역을 통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그 힘을 잃음을 엿본다. 번역자가 지난 세기 후반 독일언어예술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사람들인데 이들이 번역일을 위해 자기고유의 언어에 '훼손'을 가할 정도이니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시는 번역이 되지 않는다. 시는 창작일 따름이다. 시번역 역시 시창작이다. 언어의 정수가 그 즙을 짜내 엮어내는 예술작품이니 그렇다.
누가 비트겐슈타인의 후기작 '철학적 탐구들'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을 함께 하자 하길래 나라면 그럴 시간에 그가 얘기하는 '탐구'들을 그가 독일어를 대상으로 했듯 한국어를 대상으로 엮어보는 작업을 하겠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설사 그 작업의 결과가 보잘 것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번역보다는 한결 낫다는 고집을 나는 아직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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