툇마루

외국어

서동철 2013. 2. 8. 18:32


석사 내지는 박사 논문을 쓸 때 겪었던 곤혹스런 일이 기억난다.  글을 통해 한창 내 생각을 펼치고 있는데 어느 순간 이 일이 갑자기 탁 막히는 게다. 생각이 더 깊어지지 않고 있던 자리에서 뱅뱅 도는 듯한 느낌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휴식을 취하곤 했는데,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는 기억이다. 뒤에 내 쓴 글을 다시 읽어 보곤 바로 그 지점에서 내 능력의 한계가 드러났다 보았다. 사고의 능력이라 싸잡아 말할 수도 있겠다만 어쩌면 내가 구사했던 독일어 능력의 한계가 더 정확하지 싶다. 언어와 사고의 밀접한 관계를 생각하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니리라. 이럴 때마다 독일 아이들 마냥 내 모국어로 이런 작업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워 했다. 물론 모국어 그 자체가 그런 작업의 성공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외국어보다는 더 나은 기본 바탕을 제공한다 여긴다. 이 한계, 이 뛰어 넘을 수 없는 한계에 주먹을 불끈 쥐곤 했다.

그렇다고 독일어를 독일사람들 마냥 잘 하겠다는 욕심은 지금까지 품은 적이 없다. 독일어를 독일사람들마냥, 미국어를 미국사람들마냥 구사해야 외국어를 진짜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는데, 리히텐베르크는 외국어를 해당 나라사람들마냥 구사하는 사람을 똑똑하다고 말하기는 커녕 오히려 멍청한 사람이라 꼬집었다. 이는 차치하고라도 왜 한국사람이 미국어를 미국사람마냥 해대야 하는가? 각자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도움이 되는 미국어를 배우는 것이고 자기가 필요한 만큼 구사할 수 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말이다. 장사하는 사람들에겐 장사에 필요한 만큼, 학문하는 사람들에겐 학문에 필요한 만큼 미국어를 구사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여긴다. 그 외에 시간이 되면 한국말을 더 잘 배우고 닦음이 자기수양에 훨씬 더 도움이 된다 믿는다.

독일에 와 독일 말글을 한창 배울 때 누군가가 내게 묻기를 꿈을 독일어로 꾸냐고. 무슨 소린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 가만 곱씹어보니 그 당시 꿈 속에선 모국어로 지껄이고 있었다. 내 아무리 한국 교포나 유학생들 만나도 독일어를 하시라도 빨리 배우겠다는 욕심에 일부러 독일어로 지껄였다 해도 꿈 속에선 한국말을 쓰고 있었던 게다. 몇몇 유학생들한테 눈총을 받아가면서까지 독일어를 체화하고자 했는데 꿈 속에선 이런 욕심이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언젠가 꿈 속에서까지 독일어를 지껄였음에 나름대로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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