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이야기

돌로미테(Dolomite)

서동철 2013. 9. 2. 19:59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남부티롤 지역에 다녀왔다. 이 중에서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알프스 지역 소위 돌로미테를 찾았다. 이 중에서도 또 가장 이쁘다는 그뢰덴 계곡에 숙소를 정했다. 일주일 묵었는데, 듣던대로 엄청 많은 사람들이 몰려 나름대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 마냥. 그래 그런 번잡함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되도록 이탈리아 휴가기간인 8월만큼은 이 지역을 피하라는 권고를 익히 들었는데, 딸아이 유치원 방학기간이 바로 8월이니 우리로선 어쩔 수 없었다. 계곡 마을에뿐만 아니라 산 위에도 많은 사람들이 거닐고 있었다. 대부분 이탈리아 사람들이었고, 독일 사람들 역시 자신들의 존재를 여기 저기서 뽐내고 있었다. 얼추 2000미터 넘는 산 위에 오르면 넓은 초원이 펼쳐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남녀노소 어울려 산중산책하기에 딱 어울리는 그런 곳이었다. 걸어 오를 수도 있으나 케이블카를 이용해 오를 수도 있으니 더욱 그렇다. 엄청 비싸다: 11 내지는 12유로, 편도. 주차비는 별도. 관광지역이 보이는 전형적 모습을 아낌없이 맛볼 수 있었다. 물가 역시 당연 비싸고. 다섯살 된 딸아이와 함께 걸어 오르자니 시간 문제가 걸려 어쩔 수 없이 케이블카를 탔다. 나흘 연속, 결국 우리가 묵었던 지역에 설치된 네방향으로 이어지는 케이블카를 전부 타 본 셈이다. 내려올 땐 허나 걸었다. 때론 딸아이를 베낭과 함께 어깨에 짊어지고.

딱 하루 혼자 암벽을 타는 산행을 즐겼다. 딸아이와 아내는 산장에서 놀고. 사스 리가이스라는 3025m 높이의 산이다. 가이슬러 내지는 이탈리아 말로 오들레 산줄기에서 가장 높은 산인데, 안전자일이 설치되어 있어 자일조를 짤 필요없이 각자 안전띠를 차고 카라비너를 이용해 안전하게 암벽을 탈 수 있는 곳이다. 나는 허나 헬멧만 쓰고 그냥 맨 손으로 암벽을 탔다. 그렇게 어려운 코스는 아니고, 오히려 초보자에게 어울리는 그런 코스란 말을 사전에 듣고 올랐다. 덧붙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몰리는 코스라고 들었는데 사실 또 그랬다. 아울러 들은 사전정보에 의하면 경험 적은 사람들이 몰리는 코스다 보니 낙석 위험도가 꽤 높다 하던데, 이 또한 사실임을 내 몸소 확인할 수 있었다. 내려갈 때 카라비너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안전자일에 줄을 서서 내려가던데, 나는 카라비너 없이 내려가기에 속도를 더 낼 수 있었다. 더군다나 밑에 산장에서 기다리는 내 두 여자들을 배려해 쪼께 빨리 내려가고자 맘 먹었다. 그래 매번 고맙다는 말을 건네며 모두 지나쳤는데 바로 내 뒤에 이탈리아 젊은 남자 셋이 따랐다. 근데 뭔 말이 그리 많더냐. 쉬지 않고 입을 놀리니 내가 당할 낙석 위험이 더 크지 않을 수 없음을 직감했다. 집중해서 내려가도 피로로 인해 말끔한 낙석방지가 쉽지 않거늘 말이다. 아니나 달라, 돌이 내 뒤 내지는 내 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한번쯤이야 병가지상사지 하며 애써 무시했으나 만약 세번째로 돌이 떨어진다면 한 마디 건넬 작정이었다. 어라, 잠시 후 진짜 두번째로 돌이 떨어지는게 아닌가. 직접 맞지는 않았기에 이 또한 무시했다. 그네들 쳐다보지도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세번째로 떨어진 돌, 이 돌에 맞았다, 그것도 머리에, 만약 내 헬멧을 쓰고 있지 않았다면 사건은 훨씬 더 심각했을 게다. 어쨌거나 맞는 순간 화가 치밀어 소리를 질러야 했다. 욕을 디립다 내뱉고 - 독일말로 - 너희들 세번째로 돌을 떨어뜨렸다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놈들 중 한 명이 이탈리아 말로 뭐라 대꾸를 했는데 뭔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나 대충 몸짓을 봐 미안하다는 말과 동시에 의도적이 아니었음을 말하고자 했던 듯했다. 야 새끼들아, 이런 짓을 의도적으로 하며 산에 오르고 내리는 사람도 있냐, 내 말은 이런 돌산 지역을 오르고 내릴 땐 보다 더 집중을 해서 최대한 낙서사고를 방지함이 산행의 예라는 말이야 자슥들아, 니들은 근데 쉬지 않고 서로 조잘대며 내려오고 있잖아, 의도적이 아니었음이 돌을 떨어뜨렸다는 사실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기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없다는 말이고 이 초짜들아, 하려다 내 이탈리아 말 실력이 이에 닿지 않음을 순간적으로 깨닫고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하시라도 빨리 내려감이 상책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산장에 내려와 아내와 함께 맥주 한잔을 걸치며 이에 대해 얘기했더만 그나마 돌이 작았기에 불행 중 다행이라며 나를 위로했다. 아마 이 산을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찾았지 싶다. 낙석 때문이 아니라 아무리 명산이라 해도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난 싫다. 오스트리아 최고봉인 글록크너 산 역시 이런 이유로 아직 찾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엄청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하니 말이다. 듣자하니 돌로미테 남쪽 지역엔 허나 아직도 그 거칠음을 뽐내고 있고 이에 따라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다 한다. 그래 내년여름엔 이 쪽으로 한번 가보자 아내한테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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