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독일 TV에서 매우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봤다. 지금 세계 각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수 내지는 소비를 강조하는 경제 성향에 대한 비판이 그 주제였다. 오랫만에 배운다는 마음으로 집중해서 시청했다. 엡슨 프린터라 기억하는데, 제조과정에서 이미 삼사년 뒤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도록 특수 칩을 끼워 넣어 판매한다는 소리를 듣고 정신이 바짝 든게다. 판매실적을 높이기 위한 마켓팅 전략이란다. 이에 한 러시아 사람이 이 칩에 기록된 내용을 지워버리는, 그럼으로써 해당 프린터를 다시금 제대로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단다. 애플의 아이포드 역시 이러한 전략에 따라 판매되었고 되고 있다고. 이는 고장 나면 수선에 드는 인건비가 너무 비싸 오히려 새 제품을 사는 게 낫다는 ‘일반 상식’과는 또 다른 문제다. 아예 처음부터 계획된 망가뜨리는 짓이니 말이다.
덧붙여 유럽이나 미국 등 소위 선진국들에서 쓰다 버린 전자제품들이 콘테이너로 아프리카 가나에 ‘수출’되고 있다는 소식. 이런 제품을 다룰 줄 아는 극소수의 가나 사람들은 이를 고쳐 시장에 내놓고 팔고 있는 반면 대부분의 가나 사람들은 그 폐물들을 불에 태워 나오는 금속물을 모아 팔고 있다고. 근데 이 금속물이 독성이 강해 건강을 많이 해치고 있단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나라 사람들이 자기네들의 경제성장을 위해 마구 버리는 짓이 결국 그 만큼 잘 살지 못하는 나라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짓이 되는 모양새다. 그것도 수많은 아이들의 생명까지.
한 나라의 경제 성장을 위해 소비를 장려하고 그러다 보니 제품 하나를 만들더라도 일부러 오래 쓰지 못하도록 만들어 자꾸 다시 사게 만드는 구조다. 예를 들어 백열전구 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모 소방서에 오래 된 백열전구를 여적 쓰고 있다는데 백년이 넘었다 한다. 원래 처음 이런 백열전구를 만들 때 수명이 이 정도 오래 가도록 만들었는데 그러다 보니 판매실적이 저조함을 깨닫고 일부러 수명이 대폭 단축된 제품을 생산했다는 보도였다. 판매실적을 높여 돈을 어떻게라도 더 벌겠다는 고용주 뿐만 아니라 공장에서 이를 직접 만드는 고용인들 역시 이에 적극 동조한다고. 심지어 한 제품의 수명을 대폭 연장하는 기술 개발을 한 사람에게 고용인들이 몰려 들어 자기네들 일자리 뺏아간다고 성토를 했다는 보도를 듣고 그렇구나 했다. 높은 성장률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시장경제에 부속되는 논리가 그대로 구체적인 모습을 띄고 나타난 게다. 한 나라의 경제성장률 또한 다름 아니다. 그러니 수명 긴 튼튼한 제품을 생산함은 반국가적 행태라 볼 수 있는 어이없음이 연출된다. 위에 예로 든 백열전구는 그 이후 몇몇 나라의 백열전구 회사들이 담합을 해 수명이 짧은 제품만 생산하기로 합의를 봤고 그 이후 지금까지 이 합의는 계속 지켜지고 있다.
이에 따른 대응책으론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그 하나는 꽤 급진적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절충안이라고나 할까. 우리가 삶에 필요로 하는 양을 줄임으로써 대량생산에 대한 경제적 매력을 감소시키자는 급진책이 그 하나요,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로 인해 덩달아 쏟아지는 쓰레기를 최소화 하자는 주장이 또 다른 하나다. 수명 짧은 제품 만들어 성장과 고용을 돈독히 하자는 욕심을 채워도 좋으나 이로 인해 생산되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한 대책으로서 생산회사가 쓰다 버리는 쓰레기를 다시 챙기는 의무를 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것도 되도록이면 재활용할 수 있는 자재를 써야 한다는 주장도 첨가한다.
이것 저것 모다 귀찮고, 그냥 없이 사는 게 마음 편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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