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이야기

호흐반드(2719m)

서동철 2011. 6. 30. 17:12

저 뒤에 가장 높은 꼭대기가 호흐반드다. 사진은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줄기를 보인다. 사진 바깥으로 바른쪽에 쭉슈핏쩨가 자리잡고 있다. 


산행 주차장에 가고자 차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오르는데 갑자기 윤활유가 부족하다는 신호가 떴다. 꽤 당황했다. 내 게을러 이런 것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구나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고. 그래 어쩌꺼나 하다 당장 다시 내려가 주유소에서 윤활유를 사서 넣느니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주차장까지 가서 산에 오른 뒤 내려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주차장을 찾음이 낫다 싶어 계속 달렸다. 내려 갈 땐 엔진회전수를 낮추며 달릴 수 있으니 말이다. 맑겠다던 날씨는 또 왜 이리 흐리더냐, 정상이 구름에 덮여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Hochwand, 오스트리아 티롤에 위치한 미에밍어 산맥을 우뚝 버티고 있는 산이다. 2719 미터, 산세 역시 꽤나 험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르다 그냥 돌아갔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이 산맥은 독일에서 가장 높은 산 쭉슈핏쩨가 이끄는 동서줄기 바로 남쪽 밑에 위치해 평행으로 달리는 줄기다. 두 줄기들 사이에 있는 계곡을 가이스탈이라 부르는데, 지난 세기 초 언어예술가 호프만스탈과 작곡가 스트라우스가 거닐며 예술에 대해 담화를 나눴기로도 이름이 나 있는 곳이다. 


소문대로 암벽타기가 만만치 않았다. 자일없이 오르는 암벽타기 난이도에 있어 거의 최고치에 달하는 어려움이었다. 암벽 경사 또한 무지 급하고 시간 반 이상을 쉬지 않고 올라야 할 정도로 길었다. 더군다나 잔돌들이 무지 많이 깔려 있어 미끄러짐에 조심해야 했고 돌이 밑으로 떨어짐을 피하기 위해 매 발자국을 조심조심 내디뎌야 했다. 신경 무척 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 한번씩 “스토아!”를 외쳐야 했다.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에서 주로 쓰이는, 돌을 가리키는 사투리다. 표준 독일어로는 슈타인이다. 다행히 올라갈 땐 내 앞뒤로 아무도 없었고 내려올 땐 나와 마주쳐 위로 올라간 한쌍의 남자들 뿐이었기에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단지 내려올 때 보니 밑에서 양들이 풀을 뜯어먹고 있던데 떨어진 돌에 다치지 않았기를 바랬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쓰러져 있는 양은 한마리도 없었다. 내가 떨어뜨린 돌에 맞아 누군가가 다치거나 심지어 생명을 잃는다면 산행을 내 어찌 계속 할 수 있겠나 두렵다. 그래 오히려 떨어진 돌에 내가 맞아 다치거나 생명을 잃는 게 오히려 낫다 여긴다. 어쨌거나 두 가지 경우 모두 산행을 계속 잇기는 힘들다 보이니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터지곤 하니 산신령님께 기도를 드리고 비는 수 밖에. 


꼭대기엔 나 혼자 뿐이었다. 구름 또한 서서히 겉혀 사방팔방에 펼쳐지는 알프스 파노라마를 실컷 즐길 수 있었다. 힘든 산행이었기에 일단 소리부터 한번 냅다 질러댔다. 물론 그 전에 항상 하듯 꼭대기에 박힌 십자가에 뽀뽀를 했고. 고진감래이기도 했지만 나 혼자 그 자그마한 공간을 휘저을 수 있어 너무 신났다. 깍아지른 북쪽 벽을 내려보며 가끔씩 떠오르는 날아볼까 하는 망상을 감추느라 잠깐 놀라기도 했다. 정상방명록을 들추어 보니 대부분 이 산 바로 밑 계곡 마을 사람들이 오르곤 했음을 알았다. 그래 일부러라도 내 이름과 대한민국에서 왔음을 뚜렷히 남겼다. 지금까지 이 산 꼭대기에 발을 디딘 유일한 한국 사람 - 바로 나다. 이에 어찌 보면 뿌듯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으니 싱겁기도 했지만 단지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을 이루었기에 뿌듯했기 때문이다. 허나 산행의 목적은 꼭대기에 오름이라기 보다는 다시 내려가 집에 돌아감이라는 사실을 잊지는 않았다. 


내려갈 땐 오로지 한 생각 뿐이었다: 돌에 걸리거나 해서 넘어지지만 말자. 한번 넘어지면 한님께 그대로 직행하는 지름길이니 말이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지역이라 길 찾기가 무척 어려웠다 한다. 지금은 허나 빨간 표시가 되어 있어 방향잡기는 그런대로 어렵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해서 길이 나 있지는 않다. 따라서 이런 지역에서 산행을 즐기려면 어울리는 신발, 제대로된 등산화를 착용해야 한다. 밑창이 암벽타기에 어울려야 하고 높이 또한 복숭아뼈를 덮어야 발목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다. 독일시장에 나와 있는 알프스 고산등산화 제품들은 대부분 이러한 조건들을 충족시키는데, 값이 허나 만만치 않다. 듣자하니 한국으로도 수출이 꽤 잘 되고 있다 하는데 일반 운동화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기가 막히게 잘 닦여 있는 한국 산행길에 굳이 이런 비싼 등산화를 신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신발 뿐만이 아니다. 바지, 잠바등 특수 천이다라는 이유로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높은 옷들도 꽤 되던데 남들이 좋다고 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 보다는 자기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 그에 걸맞는 기능성을 따져 봄이 똑똑한 짓이라 여긴다. 이왕 살려면 똑똑하게 살자. 


어려운 코스를 지나 내려온 뒤 오줌을 누며 내 올랐던 산을 다시 한번 치어다 봤다. 오전에 오를 땐 구름에 덮여 보이지 않았던 산모양새가 맑은 하늘 아래 그 위세를 뚜렷히 뽐내고 있었다. 듣던대로 무지막지한 기세였다. 그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꼭대기에 이름을 남기고 내려왔다 생각하니 다시금 뿌듯한 마음 챙길 수 있었다. 동시에 만약 오를 때 날씨가 맑아 그 위세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면 내 눌린 마음에 더 힘들지 않았을까, 오히려 보이지 않았으니 그냥 묵묵히 한발자국 두발자국 침착히 내디딜 수 있지 않았나 싶었다. 예상 밖의 흐린 날씨가 산행함에 오히려 도움을 주었다는 말이다. 덧붙여 떠오른 생각이, 자동차 윤활유 부족신호 또한 그렇다, 만약 고속도로 달리다 이 신호가 떴다면 더 곤란했을 터이고 심지어 엔진이 훼손되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오히려 산길을 오르다 그 신호를 봤기에 내려가며 엔진회전수에 따른 문제없이 주유소에 들러 윤활유를 보충할 수 있으니 이 또한 한님께서 보우하시지 않았나 싶었다. 같은 일을 이리 달리 볼 수도 있구나 함을 다시금 겪었다. 되도록이면 긍정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게 좋다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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