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이야기

몬드샤인슈핏쩨 (2106m)

서동철 2011. 6. 7. 21:51


남쪽에서 북쪽으로 오르는 능선이다. 이 길을 타고 저그 보이는 꼭대기에 올랐다.


알프스 산 이름들을 바라보면 때론 섬짓하기도 하고 때론 재밌기도 하다. ‘개죽음’, ‘발가벗은 개’내지는 ‘삽꼭대기’, ‘곰머리’등등. 어제 오른 산 이름은 또 꽤나 낭만적이다: ‘달빛꼭대기(Mondscheinsptize)’. ‘달빛’이란다. 오스트리아 티롤 북부에 위치한 카르벤델 알프지 지역 동쪽에 다소곳 버티고 있는 이쁜 산이다. 코스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도 이름이 하도 이뻐 얼추 이년전부터 오르고자 벼르고 있던 참이었다. 단지 차가 있어야 어귀까지 다다를 수 있는 산이라 이 곳으로 이사오기를 기다렸다고나 할까. 우선 고속도로를 타고 인스부르크 방향으로 달린 뒤 휴양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아헨호수 쪽으로 달린 다음 페르티자우라는 곳에 이르러 4유로 50센트를 내는 유료도로를 타고 주차장에 도착했다. 날씨 또한 내 산행기분에 맞추어 함께 춤을 추듯 화창했다. 산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한바퀴 도는 산행을 짰는데, 전체 걷는 시간을 얼추 5시간 반으로 잡았다. 물론 반대 방향으로 돌 수도 있으나 언제나처럼 일단 산 꼭대기는 땀을 많이 흘린 뒤 맛보는 곳이어야 한다는 내 확신에 따라 마음을 잡았다. 


듣던대로 꼭대기 부근 암벽타기가 쉽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나마냥 재미에 취하는 사람은 한참 오르다 어 하며 밑을 바라보면 길이 저 밑에 이어지고 있음을 알고 다시 타고 내리곤 한다. 어제도 그랬다. 길은 또 왜 이리 가파르더냐. 그것도 잔돌길이라 미끄럽고. 덧붙여 폭 30센티 될까말까 하는 길이 군데군데 이어진다. 물론 집중하는 맛은 상큼했다. 한 발자국 잘못 디디거나 돌길에 미끄러지면 천길 낭떠러지 밑으로 그대로 곤두박질이니 말이다. 전체 산행길에 안전자일이 전혀 설치되어 있지 않은 특이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다지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 시쳇말로 쌈팍하다는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꼭대기 십자가 옆에 앉아 사방에 널리 펼쳐져 있는 카르벤델 알프스 지역을 눈요기함은 정말 좋았다. 이 곳으로 이사온 뒤 처음으로 다시 찾은 카르벤델이다. 뮌헨에 살 때는 기차타고 자주 들렀던 알프스 지역이다. 오스트리아 티롤지방의 수도 인스부르크 북쪽, 즉 독일 밋텐발드 쪽으로 이어지는 큰 산악지역이다. 암벽을 타야 할 곳이 많은데 돌이 날카로운 각을 자랑하는 경우가 흔하고 덧붙여 고정되어 있지 않고 흔들리거나 푸석푸석한 돌들이 널리 흩어져 있어 암벽을 탈 때 우선 조심스레 점검하며 올라야 하는 그런 곳이다. 허나 이런 모습을 일단 몸에 붙이고 나면 카르벤델 특유의 건조하면서도 때론 감싸는 듯한 맛을 만끽할 수 있는 아늑한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은 비르크카르슈핏쩨, 해발 2749m 높이다. 



내가 내려왔던 동쪽 능선이다. 바른쪽 벽은 몬드샤인슈핏쩨 북쪽 벽인데 거의 90도 경사다.


길 표시가 너무 잘 되어 있어 그런지 꽤 험한 산임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찾고 있었다. 내려 오며 마주친 한 독일남자가 내게 중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나 - 무슨 말씀 하십니까?

그 - 어, 아닙니다.

나 - (그냥 지나치려다) 그런데 말이죠, 전 한국에서 왔습니다.

그 - 제 말을 알아들으셨군요.

나 - 아닙니다. 단지 님께서 제게 중국말을 건네셨음을 알았지요. 

그 - 근데 독일말을 무척 잘 하시네요.

나 - 오래 살았지요. 박사 학위를 마친 뒤 여적 이 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 의학 공부하셨나요?

나 - 철학 했습니다. 알프스 때문에 여적 유럽을 떠나지 못하고 있어요. 산은 제게 삶의 공간이니 말입니다. 저 밑 계곡 어딘가에 있는 제 집은 소위 베이스캠프라고나 할까요.

그 - 아, 그러셨군요. 놀랍습니다. 근데 이 곳 카르벤델에 주로 오시나요?

나 - 아닙니다, 알프스 전역을 휘젓고 돌아다니지요. 재밌는 시간 이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 고맙습니다. 님도 좋은 하루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박사학위 운운’부터는 묻지도 않은 말을 한 셈이었다. 동양사람들을 단편적으로 바라보지 말라는 내심의 주문에서였다. 물론 그렇다고 이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 마음에서 그런 짓을 했다고 여기진 않는다. 오히려 단순히 자기 중국어 실력을 자랑하고자 했거나 아니면 내게 나름대로 자신의 친절함을 보이기 위해 중국말을 건넸으리라 여긴다. 허나 어쨌거나 이 곳에서 한 동양사람을 보고 우선 독일말로 어디서 왔냐 묻지도 않고 느닷없이 중국말을 건네는 모습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누구를 만나든 모든 만남에서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며 조심스레 다가서는 모습이 아쉬워 하는 소리다. 덧붙여 동양사람들은 다 이렇더라, 서양사람들은 다 이렇더라, 한국사람은 ..., 미국사람은 ... 하는 식으로 한 물에 싸잡아 뭉개는 모습은 천한 모습이니 버려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서로 다르다 함을 만남에 있어 출발점으로 삼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선입관을 버리고 직접 사귀고 난 다음에 그 사람됨을 찬찬히 뒤돌아 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몬드샤인슈핏쩨 깍아지른 북쪽 벽 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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