툇마루

이집트 혁명과 미국이란 나라

서동철 2011. 2. 18. 02:33

이 나라, 미국이란 나라 말이다, 보면 볼수록 뭐랄까, 젊잖게 말하자면 한심하고, 맘껏 지껄이자면 역겨운 모습을 종종 드러내는 그런 나라다. 이즈음 미국에선 이집트 혁명을 빌미로 새로운 논란이 일고 있단다. 이러한 아랍권의 혁명적 변화가 과연 미국 정치의 양 당들 중 어느 당에 그 공을 매길 수 있을까 하는 논란, 한 쪽은 이 전 공화당 부쉬 정부가 이라크 침공을 통해 아랍 지역을 뒤흔들어 놓은 결과가 이제 나타났다 외치고 또 다른 한 쪽은 그건 어불성설이다, 바로 지금의 민주당 오바마 정부가 취임 이래 목소리 높이는 각 지역의 자율권에 그 공을 매겨야 한다고 외친다. 결국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아랍권의 민주화 혁명은 바로 미국이란 나라가 있기에 가능했다는 자화자찬인 셈이다. 역겹지 않은가? 그 흉악한 패권주의를 서스럼없이 뽐내는 모습이니 말이다. 아직까지, 줄기차게. 


실제 튀니지 혁명과 더불어 18일간 벌어진 이집트 혁명에서 미국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무런 정치적 역할도 할 수 없었다 봐야 한다. 만약 했다면 가소로운 정도 밖에는 자기네들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예컨대 무바락 퇴임 직전에 오바마가 보인 모습과 직후에 발표한 짧은 연설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이집트 혁명은 미국의 외교정치에 아무런 직접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이와 별개로 이집트 사람들이 이루어낸 큰 일이다. 오히려 굳이 말하자면 미국 외교정치의 치부를 여지없이 드러냈다고나 할까. 중동 지역 안정 내지는 이스라엘의 안전을 빌미로 독재자의 부패 통치를 부추키지 않았다면 최소한 눈감고 모르쇠로 일관했으니 말이다. 바로 이 독재자를 이집트 사람들이 물리친 게다.


이와 관련 다음의 세 가지 사실들에 눈길을 돌리며 이들을 마음 속에 탄탄히 박아둔다:

하나, 그 혁명은 미국및 유럽연합 등의 서방세력이 아랍권에서 과시했던 영향력과는 전혀 관계없이 일어났다는 사실. 반미가 이번 혁명의 원인이 아니라 자기 나라의 독재를 없애고자 하는 일반 국민들의 정치적 염원이 불씨였다.  

둘, 과격한 이슬람 세력들이 이집트나 튀니지에선 소수세력에 불과하다는 사실. 이집트 거리시위 때 종교적 차이를 정치적 차원에서 극복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고 더불어 여자들이 정치적 이성을 자랑하는 모습 또한 엿볼 수 있었다. 여자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 과격 이슬람 세력들이 주도권을 잡았다면 보기 힘든 모습이었을 게다. 이집트에선 이즈음 아랍지역 나라들에 모범이 될만한 헌법 구성에 머리를 모으고 있다 한다.  

셋, 중동지역 안정에 있어 축이라고 여겼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에 대한 국제정치적 위상이 이번 혁명으로 바뀔 수 밖에 없다는 사실. 이제는 이 관계가 이 지역의 안정을 좌우한다는 절대적 위치를 더 이상 차지하기 힘들 게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서방세계의 눈길 또한 최소한 그 뉘앙스에 있어 변화가 오리라 본다. 허나 중동지역에 탄탄한 안정을 이루려면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이 이집트및 아랍권 나라들을 대하는 태도에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하다 여긴다.  


미국은 앞으로도 계속 곤혹한 처지에 몰릴 게다. 당장 바레인 유혈 사태가 이를 재촉하고 사우디아라비아 왕권과의 밀접한 관계 또한 미국이란 나라가 국제정치에 있어 얼마나 가증스러운지를 비춘다. 유가안정을 위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라는 합리화를 인정한다면 중동평화를 위해 무바락을 뒷받침함이 어쩔 수 없다는 논리를 반복하게 된다. 세계는 허나 이미 그 잘못을 똑똑히 바라볼 수 있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 내의 상황에 아랑곳 하지 않는, 그 부패에 동조하고 심지어 이를 키우는 파렴치는 이제 그만 둘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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