툇마루

공동체의 축제 문화

서동철 2010. 12. 4. 19:01

Oktoberfest, 해마다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시민축제입니다. 그 성대한 막을 올리는 날 열두시 정각에 뮌헨 시장이 맥주 통에 수도꼭지를 망치로 서너번 두드려 집어 넣은 후 "O'zapft is'!"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이 놀자판은 시작됩니다. 그럼 독일에서 세 번째로 크다는 뮌헨 시 전체가 맥주의 향기 내지는 악취로 숨이 막힐 지경이 되어 버리지요. 엄격히 따지자면 허나 '시월축제'라기 보다는 구월 중순께 시작하니 '구월축제'라 해야 사실에 부합되지 않나 싶은데 단지 시월 초순까지 이어지니 최소한 약간이나마 구색은 갖추었다 봅니다. 사실 이 축제는 맥주를 마시기 보다는 경마를 즐기는 판으로 1810년 10월에 시작되었다 합니다. 지금의 이 축제판이 보여주고 자랑하는 모습, 세계인들이 함께 어우러져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흥청거리는 모습은 그러니까 훨씬 후에 시작된 모습이었지요. 

우리의 고구려에는 동맹이라 불리운 시월 축제가 있었습니다. 뮌헨의 시월축제 마냥 왁자지껄 부어라 마셔라 춤 추었다 합니다. 이를 일러 속희가무(俗喜歌舞)라 합니다. 단지 그 때의 시월은 독일의 뮌헨처럼 양력 시월이 아니라 음력 시월이었습니다. 우리말로 상달이라고도 부릅니다. 
지금은 정월을 일년의 첫 달로 꼽습니다만 그 때만 해도 이 상달을 첫 달로 꼽았습니다. 그러니 세 번째 달, 즉 음력 12월이 섣달이 되는 셈이죠. 하여튼 지금은 봄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으나 그때 우리 조상님네들께서는 겨울을 한 해의 시작으로 보았습니다. 달리 말씀드리자면, 지금처럼 땅위로 생명이 솟구치는 때가 아니라 땅 속으로 사라지고 동시에 그 속에서 움이 트기 시작하는 때를 시작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하필 상달이었던 이유는 물론 한 해의 시작을 여타 종족들과 더불어 시작함으로써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자 했던 이유도 있었겠습니다만, 어쩌면 아주 현실적인 이유 또한 있었으리라 봅니다. 한가했었거든요. 농사를 짓던 종족이었든 유목을 했던 종족이었든 일이 없던 때가 바로 상달이었으니 말이죠. 
이 시절에 고구려인들은 함께 모여 축제를 벌린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를 추수감사제 비슷한 행사로 보십니다만, 아니 상달 엄동설한 한겨울에 추수감사제는 아구가 맞지 않고요, 동맹은 제천의식, 즉 하늘에 드리는 제사의 행사였습니다. 이를 빌미로 그 당시 고구려라는 연맹체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종족들이 모여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며 자신들이 사는 모습은 비록 제각기지만 고구려라는 동일한 울타리를 짓고 사는 공동체의 구성원임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술을 돌리며 어깨동무 하고 노래와 춤으로 서로가 서로의 문화를 마구 섞었고, 또 그래야 고구려라는 여러 종족들의 연맹체가 서로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될 수 있었으리라 어렵지 않게 상상해 봅니다. 
이러한 공동체 의식이 고구려를 근본적으로 떠받치는 힘이었던 바, 이 힘이 약해졌을 때 당연 고구려는 패망의 길로 서서히 닥아섰습니다. 결국 삼국 중 연맹체 의식이 가장 강했던 신라한테 패하고 맙니다. 

우리 문화에 있어 공동체가 차지하는 그 엄청난 자리매김은 이러한 역사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말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라는 말입니다. 어떤 님들은 '우리 마누라'하면 '에끼 이 사람아, 내 마누라지 우리라 하면 어쩌는가' 하십니다. '우리'를 '나'의 복수, 그러니까 독어의 wir라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말이 되나요, 마누라를 공유 한다니. 
허나 '우리'는 단수명사입니다. 원래 '우리'는 공간을 뜻하는 '울'에서 온 말인데, 그 '울'은 군집명사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집합명사적인 성격을 갖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마누라' 하면 '한 공동체에 속하는 아내'란 뜻입니다. 우리 겨레어를 제대로 알아야 우리 문화를 제대로 볼 수 있음을 단적으로 엿보고 맛보고 계십니다. 

어쨌든 이 공동체는 우리의 정신사에서 짜장 중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나아가, 사서의 대학에서 명확히 읽을 수 있듯, 동양학의 내용 뿐만 아니라 동양학의 방법론에 대한 이해까지도 이 공동체에 대한, 공동체와 나라는 개체와의 상관 관계에 대한 고찰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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