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방

김수영과의 만남

서동철 2010. 10. 23. 01:59
- 오늘 아침 측간에서 일을 보는데 말이야, 느닷없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들리니 뒤가 갑자기 꽉 막히더군. 예술이 사치가 아니라 인간 삶의 근본으로서 예술 없이는 이 삶의 의미가 전혀 없다는 진리를 (진리?)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지금까지 과연 얼마나 진지하게 경주했는가 하는 반성이 들더란 말이지. 근데 이게 뭐 창피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참담하다고 보여. 왜냐면 할 수 있었는데도 하지 않은게 아니라 할 능력이 되지 않았다는게 솔직한 얘기거든. 예컨대 작금의 경제 위기에 처한 한국의 민중 대중 군중들에게 만약 내가 명동거리 한복판에서 예술하시오 소리지르면 이들 내보고 헛소리 지껄인다며 침이나 뱉지 않으면 다행이고 십중팔구 눈에 쌍심지 깔고 누구 놀리냐 하며 아구창 날리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찬히 조리있게 내 의도껏 설득시킬 재간이 있을까? 사실 또 뭐 이리 거창하게 얘기할 필요도 없어. 내 가까이 있는 사람들, 예컨대 그래도 내 말이라면 한번쯤 잠깐이나마 귀 기울일 가족들마저도 이치가 이러니 이렇소 하고 설득할 재간을 내 과연 갖추고 있느냐 말이야. 아니 딴 사람들의 설득은 일단 차치하고라도 내 스스로가 한웅큼의 논조라도 갖고 있어 이에 확신이 서 있는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해 보는데, 있는가 하고 자문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 글쎄. 

하루 세끼 밥 먹기에 바쁜데 무슨 빌어먹을 예술 타령이냐 하면 그래도 예술 타령을 해야 하루 세끼 반찬 모자른 밥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꼬심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아니 밥을 맛있게 먹느냐 맛없게 먹는냐의 싸움이 아니라 맛있든 없든 도데체가 먹을 수 있는가의 생존투쟁인데, 예술이 주먹밥은 고사하고 맨밥이나마 먹여주는가? 하면 내 어쩔거여. 더군다나 식솔도 줄줄이 챙겨야 할 마당에 가장으로서 ..., 말 좀 혀봐 하면 - 내 어쩔거여?

한 때, 혈기 충천했던 바로 그 젊은 시절에 (지금도 젊지만 더 젊었던 시절을 말한다) 이런 궁상맞은 독백을 내뱉고 있던 차에, 아, 우리의 김수영이 내게 화악하니 다가오더만 느닷없이 귀싸대기를 갈겼다: 

이 韓國文學史 

지극히 시시한 발견이 나를 즐겁게 하는 야밤이 있다 
오늘밤 우리의 現代文學史의 변명을 얻었다 
이것은 위대한 힌트가 아니니만큼 좋다 
또 내가 <시시한> 발견의 偏執狂이라는 것도 안다 
중요한 것은 야밤이다 

우리는 여지껏 희생하지 않는 오늘의 문학자들에 관해서 
너무나 많이 고민해왔다 
金東仁, 朴勝喜같은 이들처럼 私財를 털어놓고 
文化에 헌신하지 않았다 
金裕貞처럼 그밖의 위대한 선배들처럼 거지짓을 하면서 
소설에 골몰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덤삥出版社의 二十원짜리나 二十원 이하의 고료를 받고 일하는 
十四원이나 十三원이나 十二원짜리 번역일을 하는 
불쌍한 나나 내 부근의 친구들을 생각할 때 
이 죽은 순교자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우리의 주위에 너무나 많은 순교자들의 이 발견을 
지금 나는 하고 있다 

나는 광휘에 찬 新現大文學史의 詩를 깨알같은 글씨로 쓰고 있다 
될수만 있으면 독자들에게 이 깨알만한 글씨보다 더 
작게 써야 할 이 고초의 時期의 
보다더 작은 나의 즐거움을 피력하고 싶다 

덤삥出版社의 일을 하는 이 無意識大衆을 웃지 마라 
지극히 시시한 이 발견을 웃지 마라 
비로소 충만한 이 韓國文學史를 웃지 마라 
저들의 고요한 숨길을 웃지 마라 
저들의 무서운 放蕩을 웃지 마라 
이 무서운 浪費의 아들들을 웃지 마라 

<1965. 12. 6>
 

자기위안을 위해 하는 하릴없이 내뱉는 침튀김이 아니다. 자기비판을 혹독하게 하고자 해서다. 시작은 이리 자기비판에서 발동되어야 한다는 당위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말이다. 

아울러 들리는 야멸찬 경고의 소리 또한 엿듣는다: 
철학함과 예술함에 있어서는 특히 
밑으로 한없이 곤두박치곤 하나 
위로도 끝없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진리를 새겨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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