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초록색의 싱그러움이 이자르 강변을 감싸고 있더군요. 서울의 한강에 해당하는 강이 독일 뮌헨 시에는 이자르 강이죠. 오늘 한 친구와 함께 초록의 성숙함을 자랑하는 이자르 강변의 녹음 속을 산책했습니다. 항시 맛볼 수 있는 신선함에 발길을 재촉하기가 꽤나 불편했으나 함께 간 독일 친구의 애교띤 재촉이 이를 무마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 제가 즐겨 만들어 먹는 스파게티를 함께 즐겼습니다.
편안하시죠?
한국에 있을 땐 저 참 부엌일 하기 싫어했어요. 하다못해 라면 하나 끓이기 싫어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이미 극락 가긴 틀린 놈이죠. 아무리 지금 반성에 반성을 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하물며 밥을 직접 손수 했다면 아마도 개천에서 용났다 했을걸요. 아, 물론 바닷가나 산으로 놀러 갔을 때는 했죠. 굶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으니. 놀랍게도 곧잘 한다는 소리는 들었습니다. 하기사 뭐 배 고플 때 맛이고 자시고 어디 있나요, 양이죠.
그런데 여기 와서는 四顧無親, 혼자 사니 어쩔 수 없이 직접 해서 먹을 팔자더만요. 그것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어디 요리 뿐인가요, 장도 또한 직접 봐야 하고, 설거지까지 직접 해야지요.
근데 말이죠, 우리 한국인의 밥상 문화는 이렇게 혼자 사는 사람한테는 어째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연일 쌓이더군요. 밥에다 국, 찌개와 그외 올려지는 갖가지 밑반찬들은 사실 올려지는 밥상 동우회의 모든 이들을 위한 공동의 재산임에 그 가치가 돋보이는 반면 만약 그 밥상을 딱 하니 혼자 대하고 앉아 있노라면 쪼께 어색함을 감추기 힘들어요. 누군가가 아쉬워진다고나 할까, 아니면 최소한 그 밥상 위의 산해진미가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다 생각하면 불편해지기까지 하더라고요. 그래 오래 전에 기숙사 생활할 땐 종종 옆에 있는 아이들을 불러 모아 같이 식사를 하곤 했죠. 그 아이들 공짜로 같이 먹자 하자는데 누가 마다하겠어요. 게다가 누가 요리 했는데 말이죠.
다 좋은 게 좋은 것이니 뭐이 그렇게 생활하면 되겠네 해도, 또 그렇지도 않은 게, 이런 식생활도 하루 이틀이지, 게다가 매일 매일 할 일은 수북히 쌓여 있는 상태이고, 이런 밥상 차려 먹기에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반성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 좀 고쳐야 되겠다, 최소한 이 곳까지 온 나의 목적을 유효적절하게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를 개선 내지는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단지 그럼 어떻게?
우선 개선은 왜 하는가, 나는 이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에 대해 생각을 모아봤습니다. 제 경우엔 당연 공부를 하러 여까지 왔으니 이를 행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그러니까 너무 적어도 그리고 너무 많아도 되지 않겠다 싶더군요. 물론 이 경우엔 너무 많아 탈이니 이를 어찌 줄이느냐에 초점을 맞추었고요. 이상적이라면 양을 줄임으로써 이에 대한 부담을 줄임과 동시에 질적으론 최소한 건강 유지에 문제가 없어야 하지 않겠나 싶었는데, 막상 구체적으로 어찌 해야 할꼬 머리를 굴려 보니 영 막막하더군요.
그런데 궁하면 통한다고, 퍼뜩 떠오른 생각이, 아니 내 학생 기숙사에 사는데 나와 같은 처지의 다른 아이들은 어찌 먹고 사는가를 우선 눈여겨 보고 배울 수 있지 않나 하는 거였어요. 그것도 여기가 독일이니, 신토불이라고, 독일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혼자 어찌 먹고 사는가 유심히 바라보았지요. 소위 산 지식을 습득하겠다는 욕심을 부린 게죠. 그래 가만 보니 짜장 간단히 먹고 치우는 모습이더라고요. 대부분은 물론 빵을 먹더군요. 그렇다고 빵만 먹는 건 아니고 빵에다 치즈나 햄, 쏘시지 등등을 얹어 먹는데, 맥주를 마실거리로 삼는 아이들이 대부분이고요. 그러니까 간단해요. 이에 비하면 우리의 일상적 저녁 식사는 호화판이라고나 할까요? 산해진미죠. 대학 근처 식당에 가서 찌개백반을 시켰던 그 식단를 떠올려 봐도 말이죠. 지지고 볶고 끓이고 하는 게 전혀 없으니 무지 편하기도 하고요. 그러니 힘 뿐만 아니라 시간도 절약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라는 생각이 퍼뜩 떠오르더만요.
그런데 빵 먹고 견딜 수 있을까? 택도 안되는 소리라며 꾸짖고 싶으시죠? 충분히 일리있는 꾸짖음이예요. 서울에서 사먹는 거개의 빵 종류들을 떠올리면 말이죠. 근데 독일 빵은 이런 류의 설탕 무지 섞은 푸석푸석한 빵과는 엄청 다릅니다. 달지도 않고 푸석푸석하지도 않지요. 여러 곡식류들의 독특한 맛에 연한 빵에서 단단한 빵까지 그 종류들이 엄청 많더군요. 하기사 우리는 빵을 대부분 간식으로 취하기에 그렇고 이 곳 사람들에게 빵은 주식이니 당연히 이에 대한 개발과 연구가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요.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의 세계 무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독일인들의 강한 체력에 이 사람들의 빵이 차지하는 몫은 절대 무시 못할 정도라 합니다. 어디 빵뿐입니까? 이에 얹어 먹는 치즈나 햄을 비롯한 각종 축산물의 영양가 또한 상당히 높다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이 시장 또한 독일 내로 한정이 되어 있지 않고 유럽 전체, 예컨대 유명한 프랑스의 말랑말랑한 치즈 또한 쉽게 사 먹을 수 있답니다. 그 만큼 종류가 다양해 제대로 정돈된 시장에 가서 보니 어지러울 정도더군요.
문제는 허나 이런 식생활에 내가 과연 적응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왕후장상도 싫으면 할 수 없다고 아무리 건강에 좋고 실하다 해도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면 목구멍 넘기기가 무지 힘들지
않습니까? 그래 일단 시도부터 해보자 마음 먹었습니다. 다행히 어릴 때부터 남달리 빵을 좋아했던지라 최소한 이런 시도에 첫발을 내딛기가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듣자 하니 유학생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독일의 빵 문화에 적응을 못해 작지 않은 고생을 한다는군요. 단지 막상 해보니 제게 역시 그다지 쉽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그 치즈, 한국에서 먹거리로 보다는 기껏해야 사진 찍을 때 웃으라고 하는 소리로만 귀에 익었는데 이 곳 식단에서는 거의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의 김치와 엇비슷한 위치라 하면 지나친 과장은 아닐 겝니다. 근데 이 치즈, 독일말로는 캐제(Kaese)라 부릅니다만, 아직까지 제 입에 맞추기가 상당히 거북하니 곤혹스럽기까지 하답니다. 심지어 어떤 캐제는 그 이름도 ‘쿠린 캐제’라 칭하듯 꽤 심할 정도로 쿠린 냄새를 풍기더군요. 네덜란드 특산품이라 들었는데, 허 참, 하루는 이 쿠린 놈을 글쎄 기숙사 공동 부엌에서 내 옆에 앉아 저녁 식사를 하는 한 독일 아이가 오히려 아주 맛있다고 먹는 모습을 보았는데 기가 찰 노릇이더군요. 허나 여자들 날씬해진다면 양잿물도 마신다 하듯 간단하고 영양가 있다는 캐제 즉 치즈에 제 입을 맞추려는 욕심 끊이지 않고 부렸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몸 보신하고 시간을 아껴 철학 공부에 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을 수 있다 여기고 있었기에 말이지요.
그 외 주말에 그래도 어느 정도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어 조금은 다른 음식을 맛보고자 할 때에 만들어 먹는 요리가 있습니다. 스파게티. 요리법이 꽤나 간단하다는 이유로 우리의 라면에 비유되는 이태리의 면 요리인데, 그 간단함도 상대적인 표현인 바 어쨌든 객관적으로 라면하고는 질적으로 엄청 큰 차이가 있다 봅니다. 라면은 소위 fast food의 급속 먹을거리고 이에 반해 스파게티는 우리의 요리 개념에 걸맞는 제대로 된 먹거리니 말이죠. 기숙사 같은 층에 살았던 한 이태리 여학생의 비법을 개인적으로 사사(?) 받아 만들어 먹었는데, 아, 다시 한번 엄마 둘째 아들이 갖춘 다방면에서의 능력에 자부심을 느껴 보았습니다. 진짜 맛있다고 제 스승되는 여자가 칭찬하더군요. 불을 지피고 올리브 기름을 약간 데운 다음 마늘을 넣어 아로마화 시키고, 양파를 익힌 다음 갈은 쇠고기를 넣어 반 정도 익힙니다. 그런 다음 토마토를 넣어 소스를 만들지요. 버섯을 첨가해도 좋고요. 면을 물론 따로 끓입니다. 이에는 계란이 섞인 대부분의 독일산 면보다 원단 이태리 스파게티 면을 쓰는 게 맛에 있어 훨씬 더 좋습니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스파게티 볼로냐를 대강 추린 요리 비법입니다.
Bono appet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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