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은 독일에서 집세가 가장 높은 도시이지요. 독일의 다른 도시들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적지 않은 중산층 사람들이 도시의 번잡함을 벗어나 그 근교로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찾는 경향이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데, 뮌헨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물결을 함께 타다가 이후 갑자기 그 방향을 반대로 틀었다 합니다. 적지 않은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가 함께 꾸렸던 근교의 살림살이를 처분하고 다시 이 곳 바이에른의 수도로 몰리는 추세를 보입니다. 그것도 꽤 놀라운 속도로. 뮌헨 시의 깨끗함과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위한 이런 저런 행사들이 많고 어른들 또한 가지각색의 문화행사들을 만끽할 수 있는 삶의 공간이기 때문이지요.
처음 독일에 왔을 때는 이러한 유행이 번지기 전이었으나 집세가 세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Siemens회사를 비롯한 첨단산업이 발달한 지역이고, 기차타고 남쪽으로 시간반만 달리면 알프스에 다다르며 또한 시가 제공하는 다양한 문화행사에 매력을 느꼈기에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학생들, 더우기 외국인 학생들에게 선뜻 집이나 방을 세주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지요. 이를 뭐 그렇다고 일률적으로 외국인에 대한 백안시의 소산이라고 보기에는 뭐하고,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집 세주는 사람들이 이왕이면 오래 살 사람들한테 세를 내줌으로써 사는 사람들이 바뀔 때마다 겪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부릴만한 욕심 때문입니다. 물론 집세 또한 학생들한테는 엄청 높았고요. 그러다 보니 기숙사를 많이 찾는데, 여기에 또 자리가 항상 준비되어 있는 게 아닙니다. 그 당시에 일반 학생기숙사에 들어가려면 통상 최소한 반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곤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들을 때마다 속이 많이 쓰렸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저는 참 운이 좋았던 편입니다. 얼추 서너달 기다리고 방을 얻었으니 말이지요. 우선 2인1실 방에 들어갔습니다. 함께 지내는 친구는 아프리카 카메루운에서 공부하러 온 Nana라는 젊은 아이였지요. 기억에 아마 기계공학을 공부했을 거예요. 기숙사 생활도 그렇지만 아프리카 흑인과 난생 처음으로 얘기를 나누고 그것도 한 방에서 함께 지냈는데,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자기 살림에 어울리지 않는 대형TV를 침대 옆에 두고 주로 MTV등 음악방송을 보는가 하면 느닷없이 대여섯명의 카메루운 동무들을 불러 고국에 대한 정치토론을 벌리는 등 제가 나이많은 형으로서 너그럽게 봐주기도 곤란할 정도의 ‘나뿐임’을 보이더군요. 그렇다고 이게 나를 향해 적대심을 품은 행동은 분명 아니었고요, 오히려 주위사람들을 배려함이 부족한 어린아이의 심정이었지 싶습니다. 또 다른 한편 사실 그 아이가 내게 선보였던 천진난만함에 심지어 고마움까지 느끼곤 했으니까요. 어쨌든 저로선 아프리카, 특히 카메루운이란 나라를 그 한 구석이나마 아주 생생하게 겪을 수 있었던 훌륭한 시간이었습니다. 후에 나이지리아에서 온 아이들도 서너명 알고 지냈지요.
같은 층에 모두 합쳐 17명의 학생들이 공동부엌에 공동변소를 쓰며 함께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엌이 당연 모임의 공간이었는데 독일은 물론이고 터어키, 그리스, 이탈리아, 페루, 중국, 인도네시아, 이라크, 이란, 시리아 등에서 공부하러 온 아이들을 겪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문화권의 차이에서 오는 티격태격이 없지는 않았지만 각자가 스스로에게 생소한 문화권을 바로 이러한 티격태격을 비롯한 만남의 소용돌이에서 실제로 그리고 때론 찐하게 맛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네요. 이러한 이유에서 제게는 이 기숙사에서 보낸 사년여간의 시간이 철학공부와 더불어 퍽이나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산공부의 마당이었지요. 그리니 당연 한국에서 이곳에 공부하러 오는 모든 젊은 사람들에게 이를 직접 경험함을 권하고 싶고요.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분명 더 많다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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