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방

폭력

서동철 2010. 4. 7. 03:39

다시금 >>폭력<< 대해서 님과 오손도손 얘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이즈음 어줍잖게 Benjamin 대해 주저리 대다 보니 양반이 프랑스에 머물렀던 시대의 프랑스 모습이 궁금해지더라고요. 특히 1930년대를 중심으로 프랑스의 지식인 사회의 모습이 말이죠. Bataille, Blanchot 내지는 Lacan 등등의 과격한 모습이 판을 치던 바로 격동의 시기입니다. 

하여튼 극좌와 극우의 첨예한 대립을 엿보는 가운데 폭력의 정치적 수단으로서의 정당화 차원을 뛰어 넘는 이에 대한 미화 내지는 우상화까지 저질러졌다 하는군요. 그래 이러한 모습을 님께 짧게나마 소개해 볼까 합니다. 


때는 바야흐로 1930년대 초반, 프랑스에, 다른 나라들에 비해 늦은 감은 있지만, 불행스럽게도 경제 위기가 엄습했습니다. 나라들에 비해 늦게 찾아온 대신 오래 끌었죠. 대략 1938년도까지. 실업자들의 숫자가 이백만이 넘었다 하니요(실업율 12%). 정치적으로도 매우 어수선했죠. 경제 위기에 속수무책이었던 좌파 정부, 극우파의 폭동, 이후 좌파 연맹의 재집권 등등 일련의 사태를 거치면서 남긴 인상은 허약한 정부에 의해 나라가 다스려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에 프랑스의 지식인들에게조차 - 좌파니 우파니 구분없이 - 이러한 허약한 정부로는 당시의 경제위기나 정치적 스칸달을 극복하기 힘들다 보이매 이에 대한 불만과 동시에 대안 찾기에 눈길이 돌려졌습니다. 하다 못해 당시의 러시아, 이태리, 포르투갈 그리고 독일 등의 전체주의 정부의 선동적 대규모 연대성에 비하면 너무 형편 없는 자유주의였거든요. 여기에서 서서히 반자유주의의 싹이 트는 계기가 발생했습니다. 

이에 준한 가지 예를 듭니다:

a. Valery 

어쩌면 보수 합리주의자에 속하는 사람. 벤야민이 즐겨 인용하는 프랑스 작가이자 사상가 말입니다. 사람은 1934 발표한 자신의 글에서 독재자 옹호론을 폈는데, 기가 막힐 정도예요. 독재가 당시의 혼란스런 사회를 구할 있는 걸맞는 답이라 말하며, 독재자는 수용, 반응 그리고 결정을 함께 행할 있는 사람이며, 심지어 독재자는 창조자로서 자신의 작품을 생산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음을 정당시 하니 말이죠. 그는 통치 양태로서의 독재의 현대화를 강조했던 것입니다.  

b. Gide

30 대에 양반은 공산주의자였습니다. 윤리적인 이유에서였죠. 자신이 작가로서 누리는 특별한 위치를 견디기가 힘들었다 하네요. 물론 이후 이러한 정치적 명백함이 야기한 동반 상황들이 자신의 작가적 활동에 결정적인 방해 요소로 등장했긴 합니다만. 

하여튼 양반들의 거취를 통해 당시 프랑스의 정치적 내지는 정신계의 단면을 엿본다 생각합니다. Valery 이론적인 이유로, 그리고 Gide 윤리적인 이유로 자신들의 명백한 정치적 입장 표명에 강박감을 느꼈다 해석될 수도 있고요.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Valery Benjamin 자신의 '기술 복제 ...' 제일 앞에 인용하고 있지요.) 비중 양반이 이럴 정도니 여타 젊은 지식인들은 어떠했겠어요. 이들은 적극적으로 정치적 활동에 참가하며 과격한 문제 해결 방안들을 도모하는데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죠, >>폭력<< 이러한 문제 해결의 정당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내세우려는 움직임이 트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위기 상황 극복을 위해서, 여타 적지 않은 나라들에서의 선례들이 보여주듯, 폭력이 최선의 정치적 수단이라는 생각에서였죠. 예컨대 1936 Blanchot 행동이 필요한 시대의 요청에 폭력 이외 다른 일체의 대체적 행동에 대한 불가능함까지 주장하며, 모든 비판에도 불구 이를 정당화하고 있어요: "혁명은 필연적으로 폭력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프랑스의 흐리멍텅한 민중들에게는 혁신을 위한 힘과 열정이 필요한 , 이는 단순한 수단으로는 불가하고 오로지 피의 충동 내지는 우레를 통해 엄습되고 깨워져야 한다." 재미있는 점은 좌파 뿐만 아니라 우파 또한 이런 과격한 주장에 동참을 했다는 사실이지요. 독일이나 이태리의 파쇼 정부가 해대는 짓거리에 충격을 받았거든요. 하여튼 Blanchot 과격함은 결국 테러 정부를 민중의 계몽적 선동을 위해 정당화하기에까지 이르렀죠. 

Blanchot 주장은 허나 자체 모순등의 문제가 있었어요. 폭력 행위에 따르는 논리적 후속 결과가 어찌 통제 없는 비합리적인 성격의 폭력에서 도출되어질 있느냐 하는 점이죠. 덧붙여 Blanchot 이러한 폭력적 행동을 뭣땀시 해야 하는가 하는 목적 의식이 결여되어 있었어요. 뭣땀시 민중들이 선동되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의식이 부족했지요. 같은 파의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인생, 민족의 운명, 남성상 등등의 명시적 주제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반면 Blanchot 자신의 혁명적 행동을 단순 부정으로 것이죠. 우습죠? 이럴 수도 있구나 생각하면. 

양반보다는 그래도 목적 의식이 투철한 좌파 지식인들도 있었어요: Bataille Breton. (그러고 보니 B 시작하네, 브리지도 바르도처럼^^) 이들이 주창한 소위 Contre-Attaque라는 운동은 당시 실재했던 파시즘의 위협에 대항 노동자 계급의 반격을 통한 권력 쟁취가 목적이었습니다. 이들의 과격성은 심지어 시민 민주주의를 구제 불능의 제도로 규정해버리기까지 하죠. 하여튼 당시의 정부에 대항 실제 권력 쟁탈을 위한 민중 전선 형성은 시작되었던게죠. 이에 준해 이들은 행동의 필연성과 혁명적 폭력의 적용을 강조했습니다.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방법 외에는 없다 보았으니요. 


이러한 와중에 돌출한, 최소한 눈에는 보다 심각한 문제가 바로 >>폭력의 우상화<<였습니다. 정치적 수단으로서의 폭력이라는 차원을 뛰어 넘어 폭력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다는 말이죠. 경향을 살피건대 어쩌면 당시 움직임의 논리적 결과일 따름이다 수도 있을 싶네요. 주목할 점은 이러한 폭력의 우상화는, 극과 극은 통한다 했거늘, 극좌와 마찬가지로 극우의 주장이었다는 사실이죠. 아니 오히려 극좌가 당시 파쇼의 선례를 본받고자 정도였으니 다했죠, . 다른 말로 하면 보수 민족주의자가 노동 운동에 대항하여 무기를 집었음에서 혁명적 좌파는 파쇼의 대중 선동 방법을 자기들의 전략으로 이용할 있음을 배웠던 것입니다. 물론 민족간의 싸움에 초점을 맞춘 파쇼와 국제적이고 범세계적인 좌파의 움직임은 본질적인 면에서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하지만, 진영 모두 폭력의 우상화에 고개를 숙였으니, 아이러니칼 하죠? 

그럼 이러한 우상화의 원인을 어디서 찾을 있을까요?

1930 대의 정치적 상황, 허약한 민주주의가 진정으로 보다 나은 사회를 이룰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지식인들의 회의에 비추건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라 해도, 역시 >>우상화<< 대한 설명으로는 역부족인 하네요. 어쩌면 이에 대한 보다 깊은 원인으로서 일차 대전 이후의 평화주의 운동이 아니었을까요? 이러한 평화주의가 허나 30년대의 격동의 시기를 극복하는 사조로는 너무나 허약해 보였고, 이것 갖고는 당시 맴돌았던 국제적 위기에 대항하기에 프랑스의 운명이 너무 위태로와 보였을 수도 있었겠죠. 1938 뮌헨의 히틀러에 대한 Daladier 회피는 반증이라 있고요. 하여튼 이러한 폭력의 우상화는 심지어 인류학적 상수로 보는 견해와 더불어 남성적 문화의 전형적 존재 양태로 미화되기도 했습니다. 


여기까지, 프랑스라는 특수한 나라에서 1930년대라는 특수한 시대적 상황에서 폭력이라는 징그런 놈이 당시의 소위 지식인들에게 어찌 받아들여지고 해석되어졌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지금 여기의 우리 자신을 다시금 바라보는 눈의 칼을 조금은 날카롭게 갈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은 품습니다.... 


허나 결코 간과해서는 되지 않을 점이 있죠: 지식인들이 전체 사회에 대해 가져야될 웅큼의 책임감 말입니다. 이러한 폭력을 우상화시킴으로써 폭력이 동반할 있는 모든 부정의 부수효과에 대한 사회적 책임까지 스스로 짊어질 용기가 있는 지식인들에 한해서 자신들의 전체에 대한 사고를 토대로 현실이라는 장에 직접 침투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은 경우 자신들의 현실에 대한 오류적 판단으로 발생할지도 모를 자신들의 역량 내지는 통제권 밖에 있는 모든 험악한 후속 결과들의 직접적 피해자는 누구겠습니까? 예컨대 사르트르 말이죠. 양반 스탈린주의자였으나 다행스럽게도 아무 탈없이 묵과될 있었던 이유는 프랑스라는 사회가 스탈린주의를 스스로 겪지 않았다는데 있었다 있겠지요. , 한번 반대의 경우를 상상해 보세요. 


우리 한번 천천히, 찬찬히, 쉬엄쉬엄 이에 대해 생각을 모아보도록 하죠. 

건강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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