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제,
오늘 저녁 이 곳 독일 TV에서 산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기록필름을 보았습니다. 무대는 알프스가 아니라 파키스탄과 중국의 경계에 있는 Broad Peak라는 8047m의 높이를 자랑하는 산입니다. 더군다나 언뜻 떠오르듯 정상정복을 목표로 삼는 내용은 아니고, 정상 못 미쳐 1년여 동안 눈 속에 뭍혀 있던 시체를 찾아 끌고 내려옴이 그 목표입니다.
2006년 7월 한 오스트리아 산사람이 이 산을 찾아 정상을 정복코자 올랐으나 그 정상이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지점에서 피로와 몸 속 수분 부족으로 쓰러져 목숨을 잃었습니다. Markus Kronthaler, 험한 산 오르기에 적지 않은 경험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험한 상황을 끝내 견뎌내지 못한 게지요. 함께 올랐던 친구는 극적으로 Base Camp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합니다.
일년 후, 그러니까 2007년 7월 죽은 자의 형 Georg가 티롤지방의 전문 산악인 두명과 파키스탄 현지인들과 함께 Markus가 걸었던 길을 밟으며 산 위 어딘가에 놓여 있을 시체를 찾고자 합니다. 필름은 이 산행을 기록하고 보여줍니다.
얼마 전에 보았던 헐리우드 영화 Vertical Limit 정도의 스펙터글 내지는 긴장감은 느낄 수 없었으나 급경사를 타며 눈바람을 이겨내야 하는 등 이틀인가 사흘 동안의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들은 결국 찾고자 했던 시체를 찾는 모습에서, 뭐라 할까, 수고들 하셨소 하는 말 한마디 꼭 전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구치더군요. 단지 그 팀을 이끄는 죽은 자의 형 Georg는 그 자리에 없었지요. 몸에 열이 있어 그 전날 묶었던 텐트 속에 혼자 머물러야 했습니다.
시체를 발견한 팀은 이를 포대기에 싸고 끌고 내려오는데, 이도 또 어려움의 극치에 달하는지라 중간에 어쩔 수 없이 시체를 놓고 텐트 쳐 놓은 중간 지점까지 내려와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산사람들도 죽을 판이었으니 말이죠. 그 다음 날 다행히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 Georg는 일찍 서둘러 시체를 찾고자 텐트를 나섰는데, 눈발이 계속 내리치니 조그만 미루다 보면 시체는 눈 속에 덮혀 더 이상 찾기 힘들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판단에서였지요.
포대기에 쌓인 자기 동생의 주검을 바라보는 형의 얼굴, 엉엉 울어버리는 슬픔보다 솟구치는 감정을 겨우 참아가며 애써 담담함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 어쩌면 엄청 진지한 그의 얼굴을 바라보노라니 오랜만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만요. 이제 자기 동생이 ‘진짜’ 죽었음을 인정할 수 있겠다며 이를 또한 자기 부모님들 역시 바라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의혹과 희망이 안겨주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의 소리로도 들리니 삶이 모순이라는 세상소리가 귓전에 울리기도 하더군요.
죽은 자는 지금 자신의 고향인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에 곱게 안장되어 있습니다.
(Base Camp를 떠난 뒤 산 중턱 첫날 밤 텐트 속에서 Georg는 함께 묶는 파키스탄 현지인이 자기에게 Sir라는 호칭을 붙이니 그러지 말고 자기 이름을 그냥 불러달라고 부탁을 하더군요. 그럼 자기가 더 힘이 난다는 핑계를 대던데, 그 Sir 소리 듣는 게 영 껄끄러웠던 게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파키스탄 사람은 입에 밴 소리를 없애지를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Sir Mister Georg까지는 허나 가더군요. 결국 Georg 역시 그냥 웃고 넘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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