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이틀간 연달아 산에 올랐다. 날씨도 좋았고, 몸 상태도 말끔했고, 아주 좋았다. 어디를 갈까 생각 끝에 두달 유효한 오스트리아 고속도로 통행증이 내주에 만기됨을 상기해 이 고속도로를 타고 들어가는 지역을 끄집어 냈다. 토요일엔 구페르트(2195m), 일요일엔 칼레르스(2350m) 산. 두 산들 모두 휴양지로 각광을 받는 호수 근처에 솟아 있다. 구페르트는 오스트리아 아헨 호수 근처, 칼레르스 산은 독일 쾨니히 호수 근처.
구페르트는 내게 있어 소위 운명의 산이다. 나를 알프스로 인도한 참말로 고마운 산이다. 그래 매년 한번씩은 이 산을 찾는다. 산이 그리 높지도 않고 모양새가 뛰어나 그런가 산장이 없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산에 오른다. 지난 토요일엔 날씨 또한 산행에 걸맞아 문자 그대로 남녀노소 엄청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다행히 일찍 오른 덕에 꼭대기에서 어느 정도 아늑함을 찾을 수 있었는데, 내려오는 길에 거의 행렬이다시피 오르는 사람들을 마주쳤던 게다. 산에 익숙해 보이는 할머니들과도 눈인사를 나누는 기회를 가졌다. 다음 번엔 겨울에 눈신발 신고 이 산에 오를까 한다. 겨울 산은 또 다른 감칠 맛을 풍긴다.
구페르트를 처음 알았을 때, 톰과 함께 수년 전에 왔을 때 주차료가 2유로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가격 변동이 없었는데, 이번에 3유로로 올렸음을 알았다. 가히 50% 상승한 셈이다. 그러면 이에 걸맞게 주차장 시설을 개선했어야지, 가격만 오르고 그 왼 변한 게 없다. 하다 못해 간이 화장실이라도 한 곳에 설치했다면 더 고마왔을 터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 유로 흔쾌히 지불했다. 이 동네가 뽐내는 전원 경치와 그에 따른 분위기에 대한 내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게다. 오래 전 이 곳을 관광지로 개발하겟다는 장사꾼들의 수작을 동네 사람들이 나서 반대해 결국 물리칠 수 있었는데, 그 결과 아직도 이런 아름다운 산 동네를 직접 겪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니 고맙지 않은가. 동네 이름이 Steinberg, 번역해 돌산이다. 구페르트를 일컫는 말이지 싶다.
칼레르스 산에는 일년 전에 한번 다녀 왔다. 이번에 올라 정상 방명록을 뒤져 보니 작년 9월 14일에 내 꼭대기에 있었다. 그 땐 온 산이 눈에 덮여 있었고, 안개가 또 짙게 깔려 있어 주변 경치를 전혀 즐길 수 없었다. 내려 갈 땐 비까지 쏟아졌고. 그래 지난 일요일 맑은 날씨에 이 산이 뽐내는 또 다른 모습을 만끽하고자 올랐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국경 지역에 넓게 퍼져 있는 소위 하겐산악지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산새는 그리 험하지 않으나 주차장에서 산어귀까지 부지런히 걸어 얼추 세시간 걸리는 깊숙한 곳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다. 산 바로 옆에 자그마하고 아담한 산중 호수 또한 살며시 앉아 있다. 일년 내내 시도 때도 없이 무지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쾨니히 호수 근처에 있는 산이긴 하나 워낙 깊숙한 곳에 박혀 있어 관광객들은 엄두를 내지 않고 진정으로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로 때론 붐비기도 하는 지역이다. 일년 전에는 궂은 날씨 때문이었는지 안개 속에서 꼭대기 찾느라 헤맸던 사람이 나 혼자 뿐이었는데 이번엔 꽤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장사진 이루는 구페르트에서의 모습에는 미치지 못하고.
근데 내려오는 길에서 쪼께 욕을 봤다. 자연과 오로지 나 홀로 마주하고자 정상길을 벗어나 방향표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는 지역을 통해 내려가고자 했다. 작년에 왔을 땐 우연히 이 지역에 들어서 어쩔 수 없이 이리 저리 헤매다 운이 좋아 내림길을 제대로 찾을 수 있었다. 그래 올핸 그래도 한번 겪었으니 쉽사리 지나칠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웬걸, 초행길이었던 작년만큼은 아니라 해도 또 다시 헤맸다. 자연 그대로의 석회암 돌바닥이라 제대로 걷기 또한 쉽지 않았고. 여기 저기 깊은 구멍들이 송송 뚤려 있어 잘못 디뎠다간 푹 빠져 버린다. 그럼 무지 아플게다. 사람들의 발 길이 더디니 돌바닥 또한 매우 껄끄럽고. 더군다나 구페르트 산행의 피로가 완전 가시지 않아 젊음이 무척 아쉬웠다. 다행히 작년보다 더 많은 돌탑들이 군데군데 방향을 안내함에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지만 이 역시 조심스레 찾아야 보이더만. 허나 개발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자연 속에서 혼자 걷고 있음에 기쁨으로 충만된 힘든 산행이었다. 그래 서너번 환호성을 울리기도 하고 휘파람을 부르며 춤을 덩실덩실 추기도 했다. 누가 봤다면 벌써 갔구나 하며 안타까와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내 그렇게 가고 싶어 했을 수도 있고.
이번 주말엔 오스트리아 티롤 지역 깊숙히 들어갈까 한다. 고속도로는 탈 필요 없는 지역이다. 작년에 한번 올랐는데, 그 때 역시 눈에 덮여 있어 내 무지 욕 본 산행이었다. 계획했던 내림길을 포기했어야 했고. 그래 삥 둘러 내려갔다. 올핸 이 산의 말끔한 모습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