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너달 전 처한 상황에 어쩔 수 없어 차 한대 구입했다. 폭스바겐 중고차다. 그래 얼추 30년 전에 따 놓은 운전면허증에 다시금 생기를 불어 넣었다. 그 전까진 자전거면 몰라도 누가 포르쉐를 준다 하면 돈으로 바꿔 쌈팍한 자전거를 사겠다던 나였기에 운전면허증은 가끔씩 신분증으로 사용하곤 했을 뿐이다. 독일 오자마자 한남동 운전면허증을 독일 운전면허증으로 바꾸는 일을 해치웠는데, 차도 없었고 갖고 싶지도 않았던 놈이 어째 이런 덴 머리가 그리 팍팍 돌아갔는지, 엉뚱한 자식. 그래 어쨌든 필요는 하니 몰긴 몰아야겠는데 아니 30년이 뭐 아기발가락이냐, 예수가 불과 3년 덜 살은 세월이다. 덧붙여 30년 전에 차를 몰았다면 또 몰라, 급하면 택시운전사라도 해서 밥벌이를 하겠다고 따 놓은 면허증이었다. 그 당시 차는 사치품이었고 나는 사치라면 지금도 치를 떤다. 그렇다고 동네 자동차학원에 다닐 돈도 없는 신세이니 어쩌, 야밤에 공공주차장에 살금살금 들어가 이런 저런 연습을 시작했다. 근데 어라, 내 무지 빨리 배우는 모습에 스스로 놀랐다. 하기사 면허증 딸 때도 주변에서 거의 천재적이다 할 정도로 뛰어난 운전감각을 뽐냈다만 - 그 당시 한남동 운전면허시험장에서 보통 재수 두 세번은 사탕먹기였는데 나는 첫번에 그냥 그대로 합격했다. 필기시험은 당연 최고점수였고 - 지금 이 나이에 그리 빨리 습득할 줄은 나도 몰랐던 게다.
달포정도 주차장과 동네에서 조심조심 모는 연습하다 본격적으로 밖으로 뛰쳐나갔는데, 지금은 뭐 마이클 슈메이커(Michael Schumacher) 부럽지 않을 정도다. 크. 그리고 무엇보다 달려보니 그 맛이 짜장 색다르다. 수동기아 변속의 묘미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그 전까진 누릴 수 없었던 속도감, 자발적 속도감 말이다. 고속도로에서 180킬로 달려 보니 그렇고 - 내 놈은 작아 그 이상은 속도가 나오지 않더만 - 국도에선 110 내지 120 킬로 놓고 달려봤는데, 이게 삼삼하니 내게 쾌감을 자아내는 게다. 특히 알프스를 자주 찾고자 하니 산악도로도 맘껏 달려 봤는데, 내리막길 커브 돌 때의 그, 뭐라 할까, 스릴? 서스펜스? 뭐 그런 게 나를 엄습했다. 지금은 허나 마음을 쪼께 진정시키고 속도보다는 오히려 쾌적한 승차감과 안전운전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운전자로서 많이 큰 셈이다. 언젠가 수행한다는 한 중이 내게 하는 말이 자기가 새로 운전을 배웠는데 고속도로만 나가면 속도를 내야하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욕봤다 하며 그래 결국 사진 찍혀 벌금을 물어야 했단다. 그것도 꽤 자주. 평소에 별 움직임 없이 조용한 일상사를 꾸리는 사람이 그 반대급부로 이런 증세에 사로잡히는가 싶었는데, 내가 바로 그 꼴이 되버렸나 싶었다. 나는 덧붙여 내 놈을 말이라 여긴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기마종족이었기에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교통혁명을 이룰 수 있었다. 나는 그런 훌륭한 기마종족의 후예라 자부하며 따가닥 따가닥 대신 부릉 부릉 하며 달리고 있는 게다. 물론 교통혁명보다는 오히려 교통체증을 이루는 효과가 있다만.
근데 이 눔이 사고 난 직후부터 가끔씩 비실비실 댄다. 계기판에 이런 저런 고장 신호가 뜨는 게다. 그럴 때마다 동네 정비소장 스테판한테 달려 가 하소연을 하곤 한다. 방금 전에도 다녀 왔다. 아무리 중고차라고 해도 너무 심하지 않나 싶은데, 스테판은 내게 그래도 돌려주지 말고 그 눔한테 두번째 기회를 주라고 권한다. 이 친구가 매스터만 아니라면 그런 충고 무시했을 게다. 아까 참에 이 친구 우리 함께 이 눔을 살려보자며 나를 위로하니 뽀뽀를 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아니 깝깝하다. 그렇지 않아도 한님께 돌아가기 전 여적 내게 남아있는 많지 않은 시간에 그래도 뭐인가 해 놓자는 욕심을 부리니 집중이 필요한데 이 눔이 내 신경을 이리 건드리니 성질나지 않겠나. 있으니 그렇다. 없으면 그런 성질 날 구석이 당연 없지. 그래 바탕 모습으로서 없이 살기를 만끽하고자 하는데 필요하니 어쩌냐. 필요? 모르겠다. 일단 푸념부터 해 놓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