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방

건축가 비트겐슈타인

서동철 2010. 3. 17. 07:32

오래 전에 한 건축 회사의 선전물을 받아 본 적이 있다. 각양각생의 디자인으로 제조한 문고리들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 중에 한 문고리,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사진 옆에 달려있는 문자가 팍하니 눈에 띄었다: Wittgenstein 문고리. 비트겐슈타인이 고안한 문고리란다. 간단하니, 90도로 꺽어진, 어찌 보면 지극히 단순한 고안이다. 아무 장식도 없고, 꺽어진 각 외에는 온통 두리뭉실하니 말끔함을 자랑한다. 한 마디로 선명함과 단순함의 극치미를 자랑한다고나 할까? 비트겐슈타인이 자신의 누나를 위해 설계하고 건축한 비엔나의 집 내부 공간에 어울린다는 감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한 성공한 건축물의 건축 공간과 건축 요소간의 상호 종속성을 표시한다고나 할까? 


1926년 비트겐슈타인은 친구 건축가 엥겔만과 함께 자신의 누나 집을 짓기 시작했다. 향후 2년 동안의 생애 유일무이의 건축 작업이었다. 일년 전, 그러니까 1925년 시골 초등학교 선생 노릇할 때 엥겔만에 보낸 한 편지에서 건축가로 일하고 싶다는 희망이 성사된 것이다. 좀, 아니 많이 거시기 한 점은 이 양반 건축에 대해서는 전문 교육을 받은 바가 없다는 사실이다. 대학에선 기계 공학을 배웠고, 철학은 그후 몇 장 안되는 글 써 놓고 다 끝내줬다 한 상태니 말이다. 세워진 집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쿤드만 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금은 그 곳의 관습대로 거리 이름을 따 그 집을 Kundmanngasse라고 부른다. 


뛰어난 예술가들 중 고학으로 이름날린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문득 떠오른다. 


비트겐슈타인은 그 당시 건축계를 쩡쩡 울린 건축가 Adolf Loos의 제자 엥겔만과 그로아그가 공동으로 내놓은 초안을 직접 수정하기까지 하며 건축물의 탄생에 깊게 관여한다. 어디 그뿐이랴, 위에서 말했듯 문고리 도안을 비롯 창문 쇠창틀의 고안까지 사람 미칠 정도로 세밀한 작업과 그에 따른 요구를 했다. 물론 이에 필요한 자신의 기계 공학에 대한 대학 지식이 많은 도움을 줬음에 틀림 없다. 이러한 건축에 대한 관심과 실제적인 작업에의 열정을 어쩌면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이 1928년의 건축 계약서에 한 서명에서 엿볼 수 있다. 엄연히 “건축가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이라 자필 서명했다.  


그의 누나가 남긴 기록이다:

루드비히는 모든 창문, 문, 창문 고리, 난방시설들을 마치 정밀측정기구로 재는 듯한 꼼꼼함과 동시에 최고의 우아함으로 도안한다. 그리고 그는 그후 타협의 여지없는 에너지로 사물들이 같은 곰꼼함으로 세워지기를 고집한다. 우연히 한 열쇠공의 말을 들었는데, 이 사람이 한 열쇠 구멍 땀시 묻기를, >>말 좀 해 보시오, 기술자 양반, 당신에겐 진짜루 그 밀리미터가 그렇게 중요하오?” 허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크고 힘있는 대답이 들렸다: >>예!<< 물론 그 열쇠공은 깜짝 놀랐다. 사실 루드비히는 측정에 대한 아주 뛰어난 감각을 가졌다. 따라서 그에겐 종종 반 밀리미터조차 중요한 게다.“


한 치의 불필요한 구석조차 허용하지 않으려는 이러한 세밀함과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질 수 있는 단순함에 대한 선호, 장식적 미보다는 건축 자재의 실용적 미를 내세우며 가능하면 튀어나오는 부분적인 돋보임을 억누르고자 하는 건축가로서의 비트겐슈타인의 미적 감각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는 집이다. 밖에서 보이는 모습은 초안을 내놓은 이들의 선생 Loos의 입방체적 형식을 어렵지 않게 끄집어 낼 수 있으나, 안에서 살펴 볼 수 있는 모습은 초과를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는 절약의 미 그 절정이다. 이를 통해 비트겐슈타인은 건축 대상으로서의 집이란 그 안에 들어올 장식품들이나 가구들과,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살면서 채워나가는 차분한 공간이라는 자신의 건축 철학을 말하고자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집은 후에 하마트면 헐릴 뻔했다. 상속 받은 비트겐슈타인 누나의 아들, 그러니까 우리 철학자의 조카가 대지와 함께 한 건설회사에 팔아 넘겼기 때문이다. 이에 오스트리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에 항의가 빗발쳐 결국 오스트리아 정부에 의해 그 집은 문화재로 보호되기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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