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케트 예술철학의 바탕
인간은 형이상학적 동물이다라는 말, 염세주의 철학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쇼펜하우어의 가르침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형이상학을 필요로 하는 동물이다 하는 뜻이다. 왜? 먹고 살기 바쁜데, 더운데 짜증나니 한번 내뱉어 보는 소리냐 아니면 놀리자고 하는 소리냐, 뭣땀시 뜬구름 잡는 짓꺼리가 '필요'까지 하다는 헛소리냐 마구 되치고 싶은 마음 내 충분히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르침 가만 곱씹어 보면 우리에게 주는 힘 또한 작지 않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말은 또한 인간은 이성을 가진 동물이라는 뜻과도 거의 일치하는 말이다. 이성의 능력이 바로 형이상학을 할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 놈의 형이상학이 대체 뭣이냐?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함을 말한다. 그 뒤에 무엇인가 분명 숨어 있다, 뭔지는 몰라도 그게 있다는 건 거의 확실하다 하는 어찌보면 짜장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릴 위험도 있다만, 눈 뜨고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 눈 감고 보이는 것까지 합쳐야 한다 뭐 이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나 할까? 달리 쪼께 더 멋있고 맛나게 말하자면 삶이 전부가 아니다, 삶 뒤에(앞에) 죽음도 있다, 그럼 나도 언젠간 죽을 터인데, 죽음의 세계는 삶의 세계와 어찌 다를까 하며 침식을 잊고 몽상에 잠기는 행동 또한 어쩌면 형이상학적 작업에 속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 몇몇 똑똑한 사람들은 철학과 종교의 과제라 명명하기도 하더만.
그런데 이 환상적인 두 정신 노동들 옆에 나도 한번 으쓱 하며 끼어드는 얄미운 잡것이 있으니, 바로 예술이라는 놈이다. 이 놈은 자기도 형이상학적 노동에 속한다 마구 우긴다. 그래 자식아, 우기지만 말고 근거를 대야 설득이 되고 자시고 할게 아니냐,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그런 호구적 세상에 나를 낑궈 넣으면 안되제 했더만 이 잡것이 뭐라 씨부렁대는데, 이 소리를 한번 들어 본다:
인간이 형이상학적 동물이라는 명제와 나는, 예술은 인간에 의한 그리고 인간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작업이다하는 명제와 어떠한 상관 관계에 놓여 있는가?
I. animal metaphysicum
다시 한번: 인간은 형이상학적 동물이다. 형이상학적이라 함은 인간의 생각을 보고 듣고 느끼는 제반 경험적 현상들에 붙들어 놓지 않고 이러한 현상 내지는 감각 세계의 저 너머에 있는, 허나 동시에 이런 경험 세계의 바탕을 구축하는 그 무엇을 찾는 인간적 모습을 말한다. 어찌 보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항시 이러한 신비스럽기까지 한 그 무엇을 찾는지도 모를 일이다. 종교심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지 싶다. 나아가 일반적으로 말해 신에 대한 제반 생각들을 말함이니 이는 또한 인간의 도덕심을 결정짓는 선천적 경향이기도 하다. 칸트의 절대자 개념에 대한 생각이나 퇴계의 理 개념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게다.
하여튼 인간은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이면 내지는 배후에 분명 자기가 보고 듣고 만질 수는 없는, 허나 반드시 있어야 할 그 무엇이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인식과 이해에 결정적 결함을 면할 수 없다, 아니 그러한 인식과 이해 자체가 불가능 하다는 생각이 바로 형이상학적인 생각이다.
그러니 결코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 인식의 뿌리를 캐는 땀 흘리는 노동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II. 예술은 생에 필수불가결함
그런데, 그 형이상학적인 뿌리를 캐고자 한다면, 아니 캐야만 한다는 인간 본연의 원초적 의무가 주어져 있다면, 이를 실제로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수단 내지는 경로 또한 인간에게 주어져 있어야 공평하지 않을까? 밖으로 뻗치는 외연의 경로라면야 역도나 마라톤 등의 육체적 운동을 걸맞는 수단으로 꼽을 수도 있겠다 싶으나 이는 반대로 안으로 파고드는 내연의 정신적 힘을 요구하니 일단 거개의 사람들은 철학함을 우선적으로 꼽는 모습을 엿본다.
허나 나는, 예술은 철학함이 그에 걸맞는 방법이 아니라고 감히 외쳐 본다. 단적으로 말해 이는 철학적 개념들 자체가 안고 있는 취약성 때문이다. 쪼께 펼쳐 말하자면, 철학의 개념들을 통한 따지는 말이 본래의 그 형이상학적인 무엇을 표현함에 굴절내지는 변형 - 서양 말로 deformatio -을 불가피하게 동반하기 때문이다. 반면 내겐, 예술에겐 이러한 deformatio 없이 본래의 모습 그대로 펼쳐 보여줌으로써 전달하는 힘이 있다 여긴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이렇다 저렇다 설명조로의 간접적 전달이 아니라 바로 눈 앞에 보여주는 직접적 전달의 모습인 게다. 바로 여기에 내가, 예술이 필수불가결하다는 명제의 근거가 있다. 다시 말해 내가, 예술이 이러한 힘을 갖고 있는 유일무이한 접근 방법이니 이는 형이상학적 동물인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하다는 말이 되는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예술은 근본적으로 형이상학적 작업'이라는 니체의 나에, 예술에 대한 외침의 근거를 찾을 수 있으며, '예술은 생에 필수불가결하다'는 베케트의 나를, 예술을 향한 속삭임 또한 엿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