툇마루

벚꽃놀이

서동철 2010. 4. 11. 22:52

이즈음 조깅을 하다보면 올림픽 공원 한 쪽 구석에 다소곳 자리 잡고 있는 벚나무 군상들이 유별나게 눈에 뜨인다. 바로 벚꽃 때문이다. 연분홍 색으로 치장한 크고 작은 나무들이 정원사의 세심한 손길에 의해 계획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그 규모가 지금보다 훨씬 작았는데 세인들의 인기를 끌다 보니 공원 관리측에서 조금씩 조금씩 확장을 했다. 연분홍의 벚꽃이 만개하는 매년 이즈음에 뮌헨 사람들 꽤 많이 찾는 모습 어렵지 않게 본다. 특히 날씨라도 화창할 때면 주말에 꽃놀이하는 가족들로 벚나무 주위는 그야말로 붐비기까지 한다. 


벚꽃을 바라보노라면 내겐 언뜻 오래 전 ‘창경원 밤벚꽃놀이’가 떠오른다. 내 어릴 때 동물원이 세워져 있었던 그 곳, 일제가 우리를 얕잡아 보느라 ‘궁’을 ‘원’으로 바꿨던, 그네들이 가옥의 땅높이까지 낮추느라 욕봤던 그 궁 말이다. 게다가 일본을 대표한다는 벚꽃까지 옮겨 심었다 하는데, 이러한 역사적 치욕은 차치하고 그 추억을 떠올리다 보면 절로 웃음을 머금게 된다. 소위 미팅도 이루어지곤 했다. 사실 그 땐 꽃놀이를 빌미로 사람놀이를 하러 간 게다. 꽃 보러 갔다기 보다는 사람보러, 그것도 이쁜 여자 만나 밖에 나가 밤 늦도록 술 퍼마시고. 덧붙여 입장료 내기 싫어 창경원 구석 담벽 넘다 걸리고 넘어지고…


벚꽃은 근데 한꺼번에 이삼주 가량 흐드러지게 핀 후 한꺼번에 꼬꾸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걸 화끈하다고도 하는 모양인데, 어째 나이가 들수록 내게는 이런 모습보다는 사철나무의 푸르름이 더 싱그럽게 보인다. 


아, 벚꽃하면 또 떠오르는 게 그 열매 – 버찌, 아니 뻐찌다. 내 동네 꼬마로 명성을 날리고 다닐 때 이 뻐찌 따 먹느라 욕 무지 봤다.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 뻐찌 따 먹다 주인 아저씨 나오면 냅다 줄행랑 쳤고, 함께 따먹던 한 동무가 잡혔을 땐 내 용감히 찾아가 잘못을 빌며 그 동무를 구출하곤 했다. 풀려난 후엔 허나 시퍼런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동무들과 그 다음 공격을 위한 작전을 짜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올림픽 공원 벚나무에도 뻐찌가 달리는지 알아보고픈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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