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저기 저 집 일층에 사는 할아버지 말이야, 나이 많은 뚱뚱한 개와 매일 산책하던 그 할아범 내 꽤 오랫동안 못 보았는데, 너 이즈음 본 적 있어?”
“응, 얘길 들었는데, 두어달 전 병으로 세상 떴데.”
“뭐라고? …, 그럼 그 개는?”
“당연히 개보호소에서 걷어 갔지.”
동네에서 마주칠 때마다 내게 친절히 말을 건네곤 했던 사람이다. 특히 자기 개와 우리 개는 서로 친구라며 동네사람들에게 자랑스레 떠들곤 했다. 앞니 대여섯 개가 빠진 상태라 항시 바람 세는 독일어로 말을 건네니 알아 듣느라 처음에 꽤나 신경을 써야 했는데, 언젠가 서로 야자하기 시작한 이후론 듣기에 거의 문제가 없었다. 하기사 긴 얘기는 서로 나누지 않았고, 어떻게 지내냐, 날씨가 춥구나, 개가 이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저 자식이 며칠 전엔 길 건너편 술집 앞에서 한 젊은 아이를 물어 지금 배상문제로 속이 상해 있다 등등의 짤막한 말나눔이었다.
우리말로 독거노인이었다. 어떻게 잘 지내냐 물으면 거의 일관되게 인상을 약간 찡그리며 어깨가 결린다 내지는 무릎이 시리다는 등 불평을 쏟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날씨 탓도 빠지지 않았고. 허나 뒷짐 지고 고개 숙이고 걸으면서도 어찌된 영문인지 멀리서도 나만은 그리 잘 보이는 갑다 싶었을 정도로 항시 손을 반갑게 흔들고 상냥한 몸짓으로 내게 닥아서곤 했다. 가끔씩은 심지어 개먹이까지 건네며 자기가 어제 새로 샀는데 한번 먹여 보라고 권하기까지 하고.
개들끼리는 처음 만났을 땐 서로 으르렁 댔는데, 얼마 후 서로의 위치를 확인했는지 더 이상은 그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반가와 서로 뛰어 놀지도 않았다. 주인들이 멈추어 서 있으니 지네들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서성거렸을 뿐이었다. 어쩌면 나이 차가 너무 나니 나와 함께 사는 젊은 놈이 함께 놀기에 별 흥미를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늙은 놈이 젊은 놈과 놀기에 기력이 딸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으르렁댐이 없는 평화를 뛰어 넘어 함께 섞어놀기라는 보다 더 알찬 평화의 구축에는 그 만남이 다다르지 않았다는 말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