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조깅을 할 때 잠시 햇님과 속삭임을 나누고자 멈추는 곳이 있다. 넘어가는 햇살에 내 몸의 묵은 때를 씻는 흐믓한 순간이다. 어제도 언제나처럼 고개를 이리 저리 돌리며 이마의 땀을 떨구고 있는데, 뭐인가 공중에서 팔랑팔랑 거리며 떠도는 모습이 내 눈길을 끌었다. 하, 고추잠자리, 나비마냥 가뿐히 팔랑거리며 눈 앞 공중에서 멤돌며 자신의 고운 자태를 뽐내는 게 아닌가. 빨간 꼬랑지의 고추잠자리 …, 어릴 때, 세상 모르고 동네 아이들과 함께 동네방네 휘젓고 다니며 우리의 쓰러져가는 놀이문화 보존이라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무의식 중에 띄고 의식 중에서 방방 떴던 그 때, 여름날이면 잠자리채 두 손에 꼭 잡고 동네 뒷산의 얄궂은 사냥꾼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잠자리채를 들고 꽤 많이 잡았다. 특히 여름방학 때 방학숙제 메꾸느라 곤충채집을 해야 했으니 그냥 마구잡이로 거두어들였다. 어디 고추잠자리 뿐이었느냐, 보이는대로 닥치는대로 그 채로 이리 휙 저리 휙, 나비, 메뚜기, 사마귀, 심지어 하루살이까지. 그러고 보니 그 무자비한 사냥 중 내 약을 무지 올렸던 얄미운 놈들이 퍼뜩 떠오른다 – 메미. 이 놈들은 울기는 멤 멤 하며 무지 시끄럽게 떠드는데, 우는 장소가 내 키가 닿지 않는 높은 곳이었거나 아니면 신경이 무척 예민한 놈들이었다. 한 발씩 조심스레이 접근할 때 사각 소리만 나도 냅다 줄행랑을 쳐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다 뛰어다니느라 더우면 졸졸 흐르는 개울물에 발가벗은 채 뛰어들어 물장구를 치기도 했다. 메미 대신 개울 속 돌 밑의 가재를 잡기도 하고. 함께 간 동무들과 물싸움를 벌리다 바위에 이마를 부딪혀 선혈이 낭자해진 적도 있으나 내 울지는 않았다. 남아가 어찌 함부로.
수유리가 바로 그 곳이다. 서울 북쪽의 한 조그만 마을, 내 사는 집이 있던 곳, 어릴 때부터 성년이 되어 독일로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청운의 뜻을 품고 떠날 때까지 – 군대 3년 빼고 - 줄곧 살았던 곳, 내 마음의 고향이다. 지금은 집들이 즐비하게 들어섰지만 그 땐 논도 있었다. 개구리 소리에 잠을 설치기도 했고, 올챙이 잡고 쑥 캐느라 신 들렸던 곳이다. 겨울엔 꽁꽁 얼은 논 위에서 썰매도 탔었고, 물론 만화가게도 있었다.
이 마을 지역에서 고추잠자리 잡던 사냥터와 물장구 치던 개울이 흐르던 곳을 죽 따라 올라가면 한 근사한 묘가 있었다. 지금도 있으리라. 묘지기 집이 따로 한 채 딸릴 정도로 높은 사람의 묘였다. 조병옥 박사묘. 어릴 땐 이 사람 일제시대 때 독립운동 했고 해방 후엔 무슨 장관으로서 나라일에 큰 몫을 담당했던 애국자라는 소문을 들었다. 한참 후에 다 큰 뒤 들었던 이 양반 역시 친일 역적이었다는 소리는 당연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묘 옆의 낙수터 물 맛이 떨어져 버릴 정도로. 어디 이 양반 뿐이랴, 이광수, 최남선, 서정주, 33인 중 32명, … 그러니까 드문 예외적 인물 빼고 죄 다.
오늘 오후엔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았는데, 잠자리 한 마리가 내 자전거 손잡이에 사뿐히 걸터앉지 않는가. 그냥 잠시 쉬었다 가겠지 했더만, 반 시간 정도 달려 집에까지 오는데 묵묵히 그 자리에 앉아 나를 동반하는 친근함을 보였다. 말잠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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