툇마루

고추잠자리

서동철 2010. 4. 6. 19:08

매일 조깅을 잠시 햇님과 속삭임을 나누고자 멈추는 곳이 있다. 넘어가는 햇살에 몸의 묵은 때를 씻는 흐믓한 순간이다. 어제도 언제나처럼 고개를 이리 저리 돌리며 이마의 땀을 떨구고 있는데, 뭐인가 공중에서 팔랑팔랑 거리며 떠도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 고추잠자리, 나비마냥 가뿐히 팔랑거리며 공중에서 멤돌며 자신의 고운 자태를 뽐내는 아닌가. 빨간 꼬랑지의 고추잠자리 …, 어릴 , 세상 모르고 동네 아이들과 함께 동네방네 휘젓고 다니며 우리의 쓰러져가는 놀이문화 보존이라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무의식 중에 띄고 의식 중에서 방방 떴던 , 여름날이면 잠자리채 손에 잡고 동네 뒷산의 얄궂은 사냥꾼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잠자리채를 들고 많이 잡았다. 특히 여름방학 방학숙제 메꾸느라 곤충채집을 해야 했으니 그냥 마구잡이로 거두어들였다. 어디 고추잠자리 뿐이었느냐, 보이는대로 닥치는대로 채로 이리 저리 , 나비, 메뚜기, 사마귀, 심지어 하루살이까지. 그러고 보니 무자비한 사냥 약을 무지 올렸던 얄미운 놈들이 퍼뜩 떠오른다메미. 놈들은 울기는 하며 무지 시끄럽게 떠드는데, 우는 장소가 키가 닿지 않는 높은 곳이었거나 아니면 신경이 무척 예민한 놈들이었다. 발씩 조심스레이 접근할 사각 소리만 나도 냅다 줄행랑을 쳐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다 뛰어다니느라 더우면 졸졸 흐르는 개울물에 발가벗은 뛰어들어 물장구를 치기도 했다. 메미 대신 개울 밑의 가재를 잡기도 하고. 함께 동무들과 물싸움를 벌리다 바위에 이마를 부딪혀 선혈이 낭자해진 적도 있으나 울지는 않았다. 남아가 어찌 함부로. 


수유리가 바로 곳이다. 서울 북쪽의 조그만 마을, 사는 집이 있던 , 어릴 때부터 성년이 되어 독일로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청운의 뜻을 품고 떠날 때까지군대 3 빼고 - 줄곧 살았던 , 마음의 고향이다. 지금은 집들이 즐비하게 들어섰지만 논도 있었다. 개구리 소리에 잠을 설치기도 했고, 올챙이 잡고 캐느라 들렸던 곳이다. 겨울엔 꽁꽁 얼은 위에서 썰매도 탔었고, 물론 만화가게도 있었다. 

마을 지역에서 고추잠자리 잡던 사냥터와 물장구 치던 개울이 흐르던 곳을 따라 올라가면 근사한 묘가 있었다. 지금도 있으리라. 묘지기 집이 따로 딸릴 정도로 높은 사람의 묘였다. 조병옥 박사묘. 어릴 사람 일제시대 독립운동 했고 해방 후엔 무슨 장관으로서 나라일에 몫을 담당했던 애국자라는 소문을 들었다. 한참 후에 들었던 양반 역시 친일 역적이었다는 소리는 당연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옆의 낙수터 맛이 떨어져 버릴 정도로. 어디 양반 뿐이랴, 이광수, 최남선, 서정주, 33 32, … 그러니까 드문 예외적 인물 빼고 . 


오늘 오후엔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았는데, 잠자리 마리가 자전거 손잡이에 사뿐히 걸터앉지 않는가. 그냥 잠시 쉬었다 가겠지 했더만, 시간 정도 달려 집에까지 오는데 묵묵히 자리에 앉아 나를 동반하는 친근함을 보였다. 말잠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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