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엔 여름이 언제 오느냐며 호들갑 떨더만 이즈음엔 겨울이 언제 오느냐며 라디오에서 호들갑들이다. 푄 현상 덕분에도 그렇다만 예년보다 훨씬 더 따뜻한 초겨울 날씨다. 지난 일요일 2000미터 높이 산에 암벽을 타며 올랐는데 꼭대기에서 따뜻한 햇볕에 웃도리와 신발을 벗고 한 동안 그 기운을 한껏 받는 기쁨을 만끽했다. 11월 말에, 음력 시월 상달에 말이다. 지난 토요일에 올랐던 2200여 미터 높이의 산 오름길엔 남향이라 눈이 말끔히 녹아 있었다. 일요일에 올랐던 산 오름길은 부분적으로 북향에 놓여 있어 눈밭을 거쳐야 했지만 별 문제 없었다. 이처럼 눈 또한 예년에 비해 훨씬 적게 내렸다. 허나 이번 주 목요일부턴 추워지리라는 예보를 들었다. 눈도 내리고. 겨울이 성큼 닥아 선단다. 올게 오는 게다.
알프스에서 즐기는 겨울산행은 여름산행과 다르다. 무엇보다도 눈 때문이다. 눈 덮인 산을 제대로 만나기 위해선 산에 쌓인 눈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눈공부가 필요한 게다. 무턱대고 덤볐단간 눈사태로 생명을 잃을 수 있다. 실제 매년 수십명이 알프스에서 눈사태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 쌓인 눈의 성질과 쌓여 있는 모습 등을 고려해 오르고 내리는 길을 제대로 골라야 한다. 장비 또한 제대로 갖추어야 하고. 우선 일반 등산화로는 허리춤까지 빠지는 눈 속을 헤쳐 나가기 힘들다. 그래 스키나 또는 몇년이래 인기를 끌고 있는 눈신발을 신는다. 덧붙여 겨울산행에 필수로 갖추어야 할 장비들이 최소한 셋 있다: 눈 속에 뭍혔을 때 신호를 보낼 수 있는 탐지기, 눈 속에 뭍힌 동료를 찾을 때 필요한 꼬챙이, 그리고 눈삽. 이외에 새로 개발된 베낭이 있는데, 눈사태에 휩쓸렸을 때 눈 속에 뭍힘을 방지하기 위해 에어백이 달린 베낭이다. 이 중 좋은 놈은 700유로를 웃돈다. 앞에 세 장비들 또한 합쳐 근 500유로에 달하니 겨울산행 제대로 하기가 내겐 그리 쉽지 않다. 스키나 눈신발 값은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어디 그 뿐이냐, 이에 걸맞는 옷도 있어야 하고. 밖에서 안으로 닥치는 추위나 바람을 막고 동시에 안에서 밖으로 땀을 신속하게 증발시키는 그런 특수 천이기에 메이커가지 붙으면 무지 비싸다. 내겐 허나 이보다 더욱 곤란한 문제가 하나 더 있다. 겨울산행에선 만약의 눈사태에 대비해 항상 몇몇이 조를 짜서 다니기를 권한다. 여름산행에서 마냥 혼자 다닌다면 위에 열거한 장비들 또한 갖출 필요조차 없다. 눈사태 터진 뒤 15분 이내에 구출 되지 못하면 생명 건지기가 힘들어 하는 말이니 조리 있다 여긴다. 나는 근데 산에선 진짜 혼자 있고 싶다. 그래야 산과 찐한 대화 나누는 맛을 만끽하기 때문이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눈신발을 한 켤레 새로 장만했다. 위에 열거한 장비 없이 혼자 거닐 수 있는 산행 코스를 탐색 중이다. 내 사는 동네에서 가까운 알프스 지역에 구미에 맞는 코스들이 보이긴 한다. 어쨌든 중앙 알프스 깊숙히 들어가기는 적지 아니 버겁다. 낮이 짧으니 산장에서 묵지 않고는 장거리 산행 즐기기 힘들기도 하고. 물론 눈공부도 계속 하고 있다. 덧붙여 인터넷을 통해 일기예보마냥 알프스 지역 눈사태 예보를 얻을 수 있는 고마운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어 큰 도움이 된다. 겨울에 산에 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이를 예의 주시함은 필수다. 자기뿐만 아니라 함께 산을 찾는 다른 사람들의 생명과도 직접 관련된 문제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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