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이야기

올 ‘여름산행’을 마무리 지며

서동철 2010. 12. 3. 18:37


킴가우어알프스의 대표로 손꼽히는 캄펜반드 (1669 m). 우리 동네 산이다. 


눈이 내린다. 바람도 세차게 불고. 기온 역시 뚝 떨어져 느낌에 올 가을은 이로써 그 자취를 감추지 싶다. 겨울이 성큼 다가온 게다. 알프스에 새로 내린 눈 역시 올해 더 이상 녹지 않고 쌓이기 시작할 게다. 내년 봄 내지는 초여름까지. 그래 올해 내가 치룬 ‘여름산행’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우선 이 곳 킴가우어 알프스 지역으로 이사온 뒤 치룬 일년간 산행에 자동차의 도움을 빌렸다는 점이 새롭다. 그 전 뮌헨에 살 때는 기차와 버스였으니 말이다. 이러한 공공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내게 선택의 자유가 듬뿍 주어진 자동차를 이용하다 보니 그 전에 보이지 않았던 적지 않은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도착및 출발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니 마음에 여유를 갖출 수 있어 썩 좋았고, 덧붙여 산악버스를 이용한다 해도 하루 산행을 치루기 힘든 외진 곳에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멋을 누릴 수 있었다. 물론 자동차 매연이 저지르는 자연훼손에 불편한 마음 지우기 힘드나 어쨌거나 이 곳에 살면서 뮌헨에 살 때 마냥 공공교통수단을 이용하기는 거의 불가하니 어쩔 수 없다 여기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산행은 호흐자일러 산행이다. 예상치 않았던 눈길에 짙은 안개까지 덮쳐 곳곳에서 내 한계를 인지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전체 산행시간 역시 얼추 12시간, 자동차를 타고 가고 오는데 3시간을 합치면 15시간을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던 게다. 때론 40 내지는 50도의 경사에서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과 싸워야 했으며 빙하 위에선 눈 속에 허벅지까지 빠진 상태에서 5미터도 채 되지 않는 시야에 정상길에 오르는 길목을 찾지 못해 ‘누구 없소’하며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산신령의 도움에 극적으로 길을 찾아 정상에 오른 뒤 세찬 바람 속을 뚫고 가파른 눈길을 이미 발목까지 푹 젖은 상태에서 내려오며 겪었던 고통 또한 여적 생생하고. 어두컴컴한 상태에서 주차장에 도착하기까지 단 한 사람도 마주치지 않았던 긴 산행이었다. 일부러 하라 하면 머뭇거리지 않고 거부할 산행이다.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느니 혼자 마테호른이나 몽블랑을 오름이 더 낫지 싶다. 또 다른 한편 작지 않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덧붙여 아무 사고 없이 치룬 산행이었으니 뿌듯한 마음에 아직도 미소를 머금곤 한다. 내년 여름에 맑은 날씨를 택해 다시 한번 오를 생각이다. 

산을 사랑하는 벗이 찾아 오면 서슴치 않고 권하고픈 산행으로 호흐칼터를 꼽는다. 그렇게 어렵지 않고 또한 그렇게 쉽지도 않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부 알프스의 참맛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산행이라 여겨서다. 특히 난이도 높은 두 군데 암벽타기에서 절대 집중과 경험이 요구되지만 이 역시 알프스의 참모습에 속한다 여기니 하는 말이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함 없이는 알프스와 사귀기 무척 힘들다는 말이기도 하고. 알프스에서 ‘보는 산행’을 즐길 수도 있으나 무엇보다도 ‘겪는 산행’, 산 속에서 몸과 마음을 통해 자기 스스로와 싸우는 그런 산행을 맛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특히 그렇다. 이런 우여곡절을 하루에 맛볼 수 있는 멋진 산행 모습을 바로 호흐칼터에서 펼칠 수 있다. 매년 한번씩은 오를 욕심이다. 

올해는 계획대로 내 사는 곳에서 가까운 알프스 지역들을 두루 돌아다녔다. 오스트리아 카이저알프스로부터 시작해 동쪽으로 달리며 잘쯔부르그 알프스 지역까지 꽤 알려진 산들과 직접 상견례를 치루었다. 그래 지금 이 지역들 산에 오르면 주변 산들과 이미 안면이 있어 반가운 마음에 미소 짓곤 한다. 산 좋고 물 맑기로 유명해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지역이기도 하나 자세히 살펴보면 혼자있음을 즐길 수 있는 곳도 아직 몇 군데 있다. 특히 먹고 마실 수 있는 산장이 없고 산행 길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곳에선 어김없이 그렇다. 이에 걸맞는 산행을 서너군데서 치뤘는데 이 중 특히 그로세스 로트호른은 썩 멋진 산이라 여긴다. 비록 내 그 곳에서 길을 잃는 등 모험을 치루어야 했으나 이 산이 보이는 맛은 짜장 감칠날 정도였다. 그래 매년 한번씩은 찾아가 내 발자국을 남기며 산 속에 혼자 있음이 베푸는 멋진 무대를 만끽할 작정이다. 

내년에 맞이할 또 다른‘여름산행’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인다. 중앙 알프스 지역을 중심으로 버티고 있는 3000미터 이상 되는 산들과 좀 더 집중적으로 친해볼까 한다. 빙하와 만년설이 펼치는 모습을 떠올리며 벌써부터 군침을 흘린다. 산장에서의 하룻밤 역시 상큼하고. 

내게 있어 일상생활 펼치는 집은 베이스캠프요 들숨과 날숨으로 뒤범벅되어 즐겨 거닐고픈 곳은 산 속이다. 이 곳으로 이사온 이유도 이를 좀 더 찐하게 맛보기 위해서고.  그렇다고 내 ‘베이스캠프’를 어느 때고 주저없이 떠날 수 있는 신세가 아니니 호시탐탐 내게 주어진 기회를 엿보며 산다. ‘여름산행’이 있으면‘겨울산행’도 있다. 주로 눈과 싸우는 산행이다. 철따라 변하는 자연의 모습에 내 모습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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