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방

죽 음

서동철 2010. 8. 20. 17:46


님, 

교황 요한 바오로 II세의 장례식 장면을 보았습니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장례 행사라는 방송매체의 떠벌림에 걸맞게 큰 행사더만요. 어쩌면 그만큼 큰 삶이었기에 죽음 또한 크게 보였지는도 모를 일입니다. 카톨릭 안으로는 여성 문제 등에서 확연히 엿보듯 (지극히) 보수적이었던 반면 밖으로는 개혁 내지는 심지어 혁명적 인물이었던 폴란드 사람이었습니다. 예컨대 동구권의 탈소련화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는 평을 받고 있죠. 허나 무엇보다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카톨릭의 종교심을 다시금 심는데 하시라도 노력을 중단하지 않았고 또한 이들에 대한 사랑의 종교심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준 인물이었습니다. 카톨릭적 삶의 현재요 동시에 미래였으니 말이죠. 그러기에 오늘의 장례식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여든 넷이라는 연세로 돌아가신 분과의 마지막 상견례를 하고자 모였다 보입니다.

죽음, 큰 말입니다. 그러니 서양의 적지 않은 사상가들이 한번 쯤은 건드리고 지나가는 그런 철학적 먹거리입니다. 오늘은 허나 교황의 죽음을 빌미로 문득 떠오른 이에 대한 잡생각을 쪼께 정리해 님께 반가움의 표시로 살짝 띄워 보내 드립니다.

천당이나 극락에 가고 싶어 안달 하는 삶이 보여주는 죽음에 대한 무턱댄 두려움은 일단 차치해 둡니다. 이를 뒤로 하고 앞을 바라보니 아른거리는 두 가지 모습들이 있습니다:

하나,

죽음을 항시 염두에 두기 보다는 아예 잊고자 하는 경우, 이는 어쩌면 프랑스의 큰 사상가 몽테뉴(Montaigne: 1533-1592)의 죽음에 대한 가르침과 연결되는 듯합니다. 왜 그 '에세이'라는 큰 글을 쓴 사람 있죠? 이 양반은 "철학함이란 죽음을 배우는 것이다" 라 고 말하거든요. 짧게 요약해 보면, 죽음을 두려움과 함께 항시 염두에 두며 사시나무 떨 듯 불안해하기 보다는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든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운명적 결정임을 인지하자는 주장이죠. 뒤집어 말하면 결국 열심히 (철학적으로^^*) 살자는 호소라고 봅니다. 이의 최고점에는 몽테뉴 스스로 인용하는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드(Ovid: 43 B.C.-?17 A.D.)의 노래가 버티고 있는 듯 보이고요:

Quum moriar, medium solvar et inter opus.

(죽음은 일하고 있는 와중에 나를 데려가야 한다.)

바로 저 역시 원하고 원하는 바임을 고백합니다. 그만큼 죽음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제 마음에 와 닿는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와는 달리 아직까지도 저의 어리석음에 막연함이라는 힘으로 누르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있습니다. 이는

둘,

완전 초연한 경우, 여기에 동양 최고의 선승이라 칭송되는 우리의 원효(617-686)가 등장합니다. 이 양반은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러요:

莫生兮其死也苦

莫死兮其生也苦


(세상에 나지 말아라 죽기가 괴롭다

죽지도 말아라 사는것도 괴롭다)

이 가르침에 대해서는 저 역시 항시, 헐떡거리기는 합니다만, 곱씹어 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원효의 파계를 통해 맛보는 이 양반에 대한 같은 사람으로서의 친근감이라고나 할까, 님이 말씀하시는 '동무'가 단박에 고승으로 돌변 회귀하며 저같은 소인배와 틈을 벌리는 잔인한 순간을 겪는다고나 할까요?

나아가 동일한 사람의 삶에서 이러한 대척의 모습을 엿보니 이는 제가 개인적으로 예술함 최고의 원칙으로 꼽는 coincidentia oppositiorum(대척점들의 합치)의 한 구체적 예를 보는 듯도 합니다. 즉 역설의 미를 구체적 삶에서 실천하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

예술 속에서 가끔씩 만끽하는 이러한 아름다움, 오늘 님께 드리는 큰 절은 죽음의 한 가운데에서 삶을 엿보는, 엿보고자 하는 예술적 힘을 노래하는 산문 한 토막으로 맺을까 합니다. 스위스의 작가 로베르트 발저(Robert Walser: 1878-1956)의 짧은 글 "어머니의 무덤 (Das Grab der Mutter)"를 번역합니다:

"어머니의 무덤

어 느 일요일, 저녁 때쯤, 나는 묘지에 갔다. 내가 살고 있는 데서 몇 걸음 떨어져 있는 장소에 위치해 있다. 비가 내린 직후라 모든 게 젖어 있었다, 길, 나무들. 나는 죽음의 뜨락 속으로 들어가 오래된, 고요하고 성스러운 무덤들로 향했다. 그리고 여기서 나를 맞이하는 것은 마치 달콤하고 사랑스럽고 순결한 두 팔로 안아주는 듯한 아름답고 신선한 초록, 이전에 전혀 보지 못했던 초록이었다. 조용히 나는 자갈로 덮인 길을 걸었다. 모든 것이 고요할 따름이었다. 그 어떤 이파리도 움직이지 않았으며 그 어느 것도 동요하지 않았다. 마치 모든 것이 귀를 기울이고 있는 듯했다. 둘러 퍼져있는 축제의 기운을 느끼며 또한 죽음과 삶의 오래 되었으나 항시 신선한 수수께끼에 대해 길고 깊은 사색에 잠긴 듯 초록은 자신의 촉촉하고 황홀한 아름다움에 걸려 있고 놓여 있었다. 나는 그러한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심각한 죽음과 침묵의 장소가 어찌 영원히 그렇게 달콤하고, 그렇게 푸르고, 그렇게 따스한 가를 본다는 사실이 나를 엄청 큰 힘으로 사로잡았음에 틀림없다. 나 외에 어떤 이도 보이지 않았다. 초록과 묘비들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이 모든 적막 속에서 숨쉬는 것조차 엄두를 내기 힘들었으며 나의 발걸음은 모든 성스럽고 진지하고 그리고 부드러운 침묵의 한 가운데에서 내게 뻔뻔스럽고 거칠게 닥아왔다. 끝없이 친절하고 사랑스럽게 아카시아 나무의 풍성한 초록은 내가 서 있던 한 무덤 위를 걸치고 있었다. 내 어머니의 무덤이었다. 그 곳에선 모든 게 속삭이고 중얼거리며, 말하며 가리키는 듯 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의 생생한 모습이 자신의 얼굴과 그 얼굴의 고상한 표현과 함께 푸르고 적막한 측량할 수 없는 심연의 무덤으로부터 부드럽고 신비스럽게 솟구치고 있었다. 오랫동안 나는 거기에 서 있었다. 허나 슬프지는 않았다. 나와 너 또한, 우리, 우리 모두는 언젠가 한번은 그 곳에 간다. 모든 것이 조용히 포함되어 있는 곳, 모든 것이 멈추고 그리고 모든 것이 스스로를 침묵으로 분해해야 하는 그런 곳.
"

건강하시고, 우리 또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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