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뮌헨에서 쭉슈핏쩨 방향으로 내려가는 새벽 첫 완행열차를 타면 언제나 몇몇 독일 아이들의 지친 모습을 볼 수 있다. 밤새 뮌헨에 널려 있는 디스코텍에서 뛰놀다 새벽에 시근교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이다. 몇몇은 여기 저기 자리를 잡고 퍼져 자고 몇몇은 피곤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듯 얘기를 하며 킥킥거리곤 한다. 나는 되도록 이런 아이들이 없는 곳을 찾아 자리를 잡는다만 그런 곳 찾기가 힘들어 때론 얼추 40분 가량 참고 눈과 귀를 돌린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Weilheim 역에서 내리기 때문이다. 방해를 당하는 것보다 스스로를 방해받지 않도록 함이 더 똑똑하다는 생활의 지혜를 실천하느라 욕보곤 하는 게다.
쭉슈핏쩨 북동쪽으로 마주하고 있는 크라머슈핏쩨를 찾았다. 이 산은 쭉슈핏쩨의 마을 가르미쉬의 소위 집산(Hausberg)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높이는 2000미터도 채 되지 않지만 동쪽에서 서쪽으로 횡단하는 산길이 꽤 길기에 우습게 보다간 큰 코 다친다. 특히 이즈음 여름시즌 시작하기 바로 전에 여적 쌓여 있는 눈 때문에 힘이 꽤 세야 북쪽으로 경사진 300미터 이상의 길고 가파른 눈밭을 가로질러 횡단할 수 있다. 물론 서쪽 내리막길에선 이즈음에만 즐길 수 있는 눈밭 위 미끄럼타기를 만끽할 수 있다는 장점 또한 있다. 이런 8시간 남짓 이어지는 '대장정'을 즐기고자 열차에 올랐더만 예상대로 몇몇 독일아이들의 매가지 없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봄이라 듬성듬성 무리를 지어 새벽 공기를 타고 알프스 근처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어 싸가지 없이 굴지는 않겠지 하는 희망은 품었다. 여느 때처럼 자리를 잡고 앉아 오늘의 산행이 펼쳐지는 모습을 미리 머릿 속에 그리고 있는데, 어라, 독일아이들의 소리를 뒤덮어 버리기에 손색이 없는 중국아이들의 우렁찬 소리가 새벽공기를 뚫고 들리지 않는가. 남녀 섞어 20대로 보이는 젊은 아이들 네명이던데, 우리말에 '호떡집에 불났다'는 문구가 실제 어떠한 모습을 그리는가를 볼 수 있었다. 독일아이들 소리가 나긴 나던데 중국아이들 소리에 막혀 튀지를 못하더만. 한 시간 이상을 '불난 호떡집'에 머물러야 했다. 하기사 속삭이는 중국말은 어찌 들릴까 하는 의문은 내게 여적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독일아이들마냥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음은 배움이 모자른 탓이라 하겠는데, 중국아이들은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경우인 듯 싶으니 사람 탓이라고 바라봄은 설득력이 없다고 여기고 만다.
어, 근디 오늘 뭔 일이다냐, 이러한 야멸찬 중국소리를 뒤엎어 버리는, 독일소리도 아니고 중국소리도 아닌 또 다른 소리가 새로 울리기 시작하는디, 시방 환장하겠더만. 바로 바이에른 소리였던 거시여. 대여섯명의 중년 바이에른 골짜배기들이 함께 소풍을 가는 모양이던디, 이는 참말로 이 곳 사람들이 내뱉듯, '입병' 걸린 사람들의 아우성이어써.
가르미쉬 마을을 횡단한 뒤 산행 입구에 들어서니 숲 속 새들이 거의 무지막지하게 지저귀고 있었다. 너무나 반가왔다. 이 지저귐에 귀를 씻고 또 씻을 수 있었으니 휘파람을 불며 내 고마운 마음을 살짝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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