툇마루

마르타의 손

서동철 2010. 4. 3. 16:16

여인을 알게 되었다. 환갑 지난 독일 여자 마르타다. 지금은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고, 이전에 한창 일할 때의 직업을 지금도 취미 삼아 계속 손에서 놓지 않은 맛을 보고 있다: 인쇄업

지금이야 전부 컴퓨터화 되어 있지만 이전에 납활자 인쇄였다. 납으로 제작된 알파벳 문자 하나하나씩 줏어 조립한 인쇄판을 엮는 일이었다. 이에 웬만큼 능숙한 솜씨 아니면 어림없는 일이기에 독일에선 기술교육이수과정을 통해 자격증을 발급했었다. 마르타는 60년대에 직업에 도전을 했는데, 당시엔 통상 남자들만의 직업으로 통했다 한다. 교육과정 홍일점이었던 그녀는 나중에 자격증을 받고 감격적인 순간을 즐기던 자기 이름 앞에 남자를 호칭하는 말이 붙어 있음을 발견했다. 후에 그녀는 이를 스스로 교정해 벽에 걸어 두었다. 지금도 그녀의 취미 작업실 벽에 걸려 있다. 


며칠 그녀는 몇몇 지인들을 초대해 전통적 (구식) 인쇄가 어찌 이루어지는지를 시범을 통해 보여주며 실습을 통해 맛볼 있는 한마당을 벌렸다. 동시에 자기가 정년퇴직 이후 벌리고 있는 소위예술인쇄작업에 대한 소개를 했다. 역시 지인들의 무리 속에 끼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눈에 그녀의 손이 영화의 클로즈업마냥 화악하니 다가왔다. 일꾼의 손이었다. 거친 일에 닳고 닳은 거칠은 , 시골에서 농사 짓는 당숙모의 손과 얼추 비슷한 모습이었다. 이즈음 젊은 층에게 인기있다는 모델들의 가냘픈 손과는 엄청 다른 손이었다. 그림으로 치면 독일화가 벡크만과 프랑스화가 르노아르의 차이라고나 할까? 

손에서 곱지만은 않았던 그녀 인쇄공 시절의 단편을 보는 듯했다. 남자들이 지배적이었던 세계에서 여자 혼자 거칠음을 뚫고 나가기 위해 욕보고 애쓴 흔적이 물씬 뭍어있다고나 할까? 잉크에 뒤범벅된 손으로 인쇄기를 돌려야 했으니 손에 힘이 들어가야 했고, 그러다 보니 마디 마디가 뭉특해질 밖에 없었을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납활자를 끼워맞추는 능숙함은 가히 예술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녀의예술인쇄일은 돈벌이라 하기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고 그냥 자신의 여가 선용이라는 맥락에서 열중하고 있다고 마르타는 말한다. 몇년 후엔 자기가 평생 모아놓은 전통적 인쇄에 준한 물품및 기계들을 자신의 시골 집에 전시해 놓고 향토박물관 식으로 일반에 공개하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단다. 그녀의 손은 계획의 성공을 알리는 징표임에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르타의 시연을 보고 헤어지는 참에 그녀의 손을 직접 움켜잡아볼 기회를 가졌다. 일부러 그리고 조금은 길게 붙잡고 그녀 삶의 흔적을 홀로 만끽했다. 허락도 없이 즐기고자 하는 나의 뻔뻔스러움에 미안한 마음과 함께 고마운 마음도 함께 전했다. 그녀의 눈웃음은 마냥 일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