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방

칸트

서동철 2010. 3. 7. 19:31

들어가는 말


Immanuel Kant(1724-1804), 큰사람이다. 특히 철학계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상은 세상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다. 철학 공부하는 독일사람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그의 주저 ‚순수이성비판’을 기독교 신자들이 성서 대하듯 우대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만큼 그 책을 아낀다는 말도 되지만 또한 그만큼 자주 들추어본다는 말이기도 하다. 철학사를 가르치던 한 독일교수는 하루는 칠판 위에 간단한 서양철학사를 끄적거리기를 다음과 같이 한다: „플라톤......, 칸트......“ 덧붙여 누가 한 소리인지는 확인하지 않았으나 칸트가 자기 이전까지의 서양철학을 모두 수렴하여 자기 이후의 서양철학에 기본 바탕을 만들었다고 칭송한다. 틀렸다 하기에는 머뭇거릴 수 밖에 없는 외침이다. 심지어 서양철학사 공부를 지나칠 정도로 등한시한 지난 세기 최대의 철학자라 불리는 비트겐슈타인조차 자신의 철학을 설득시키고자 칸트철학의 힘을 빌리는 모습을 보인다. 이 정도니 뭐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개인적으로 만약 독일철학자들 중 대한민국에 제대로 소개하고픈 철학자를 꼭 한 명만 대시오라는 청을 받는다면, 선뜻 칸트를 꼽고 싶다. 과감하게 말하자면 헤겔보다는 칸트다. 왜냐고? 이에 대한 자세하고 복잡불명료한  답은 앞으로 칸트 철학을 서술해 나가며 알아보기로 하고 오늘은 우선 간단명료한 답을 앞에 내세운다: 칸트가 헤겔보다 훨씬 더 원천적이기 때문이다. 헤겔보다는 칸트가 철학함에 있어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보다 더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칸트는 헤겔없이도 이해가 가능하지만 헤겔은 칸트없이는 이해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도 그럴 것이 칸트에서 시작해 피히테를 거쳐 헤겔에서 완성되었다는 소위 독일고전철학이니 말이다. 어디 그 뿐이랴, 쉴러와 휄덜린의 언어예술적 깊이 또한 이루어지기 힘들었으리라는 추측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어디 그 뿐이랴, 그 당시 인류가 처해 있더 계몽 이전의 무지몽매한 어두움 속에서 밝음으로 이끌었던 ‚모세’가 등장하지 않았으리라는 참혹한 상상이 가능하니 어찌 입에 침이 마를 수 있겠는가? 


‚칸트 철학’이라 해서 꼭 칸트 철학 뿐만 아니라 이 철학을 바탕으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 놓았던 독일고전철학의 태생 모습까지 아울러 다루어보고자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름을 들자면 라인홀드, 야코비, 피히테 등등 말이다. 때론 번역물들을 제시할 작정이며 때론 이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 또한 붙여 선보일 예정이다. 나아가 이에 대해 뭇님들과 말을 섞음으로써 나 혼자만의 독무대가 이어지기 보다는 그 님들과의 공동무대가 형성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덧붙여 이왕지사 벌린 판이니 한국 철학계에서 소위 칸트 전문가 내지는 대가라는 사람들 – 있다면 - 도 아울러 기꺼이 초대한다. 학생이면 어떻고 교수면 어떻겠는가, 아 물론 시간강사도 괜찮고, 정규직인든 비정규직이든 상관 없다. 


번호를 매기며 진행시키고자 하는데, 얼추 100번 쯤에 도달하면 잠깐 휴식을 취할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