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고대 희랍 철학자 탈레스(기원전 624-기원전 547)는 삶과 죽음은 하나라고 가르친다. 살든 죽든 매 한가지란 소리다. 그래 죽음을 두려워 하는 한 친구가 묻기를, 그럼 당신은 왜 사시오 하니, 탈레스 왈, 내 말했지 않소, 살든 죽든 매 한가지라고. 꼭 죽을 필요가 있느냐는 답이다. 물론 꼭 살 필요가 있느냐는 뜻도 포함되어 있고. 단지 질문을 그렇게 던지니 꼭 죽을 필요가 없어 이리 산다고 대답한 듯하다.
우리 원효 또한 엇비슷한 가르침을 남겼다. 한시로 읊기를,
莫生兮其死也苦
莫死兮其生也苦
(세상에 나지 말아라 죽기가 괴롭다
죽지도 말아라 사는것도 괴롭다)
그렇다고 원효가 탈레스를 읽었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단지 동서양의 고전적 가르침들이 한 뿌리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은 해 본다. 그렇다고 이를 여기서 밝히고자 하는 바는 아니고, 죽음을 두려워하고 나아가 오래 살고자 하는 욕심을 부리는 모습에 일침을 놓고자 해서 꺼낸 말이다.
얼추 20년 내 지금 마냥 산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를 허락하지 않는 몸뚱이 속에 갇혀 있고픈 마음 전혀 없다. 그 땐 내 혼백을 몸뚱이로부터 해방시켜야 마땅하다 여긴다. 그러다 보니 이즘 시간 지나는 소리가 이전보다 더 크게 들린다: 휙, 휙 하는 소리. 이 소리에 때론 화들짝 놀라 글 쓰는 일에 매달리기도 한다. 제대로 된 글이 나오면 시간이 채워진다는 느낌에 나이가 내지르는 앙칼진 외침이 어느 정도 누그러지기도 하니 말이다. 매우 드문 경우이긴 하다만.
처한 상황이 이 정도되니 일곱살 난 둘째 딸아이가 뽐내듯 곱게 성장하는 모습에 적지 않은 위로를 받는다. 아니, 매일 매일 만끽하는 삶의 기쁨이라 해야 걸맞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그 아이한테 내 무척 고맙다. 글이 지금 이 순간처럼 제대로 나오지 않아도 그 아이 떠올리면 웃음이 절로 빙그레 솟는다. 그럼 됐다.